몬스테라

허리 디스크가 선물한 수경재배, 그리고 '치즈 플랜트'의 다정한 철학

by mini

서른에 찾아온 훈장 아닌 훈장, '허리 디스크'

프리랜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며 꽃과 함께해 온 시간. 그 화려한 이면에는 무거운 짐을 옮기고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고단함이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50대 성공한 회장님들이나 얻을 법한 업적을 30대에 조금 일찍 달성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허리 디스크'라는 훈장입니다.

벌써 10년째 디스크를 관리하며 일상의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식물 집사로서 느끼게 된 뜻밖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식물을 사랑하지만, 물을 줄 때마다 무거운 흙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는 일이 허리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식물을 돌보는 기쁨이 통증에 대한 걱정으로 퇴색될 무렵, 저는 '수경재배'라는 다정한 방식에 눈을 떴습니다.


'허리가 귀하신 분'들을 위한 반려 식물 처방법

수경재배는 저처럼 허리가 약한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대안입니다. 화분을 옮길 필요가 없다는 점 외에도 장점이 참 많죠.

청결함: 흙이 없으니 뿌리파리 같은 벌레 걱정이 없습니다.

직관적 관리: 투명한 용기 너머로 뿌리 상태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 물 주기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천연 가습: 물이 증발하며 실내 습도를 적절히 조절해 줍니다.

단골 식물가게 사장님께 부탁해 흙을 모두 털어낸 작은 몬스테라를 투명한 꽃병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몬스테라와의 동거는 무척 평온했습니다. 무거운 화분을 들고 화장실을 오가는 대신, 그저 줄어든 물을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요.


잎에 구멍이 뚫리는 진짜 이유

다행히 저의 몬스테라는 물과 햇빛만으로도 무럭무럭 자라주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드디어 예쁜 '치즈 구멍'이 뚫린 새 잎이 돋아났습니다. 그 생명력이 어찌나 신통방통한지, 원예 심리치료가 별 건가 싶더군요.

몬스테라는 미국에서 '치즈 플랜트(Cheese Plant)'라는 귀여운 별명으로 불립니다. 잎이 자라며 구멍이 뽕뽕 뚫리는 모습 때문이죠. 과학적으로는 바람에 꺾이지 않기 위해서 혹은 빗물을 잘 흘려보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학설은 따로 있습니다.


"아래에 사는 작은 식물들에게 빛을 나누어 주기 위해"

몬스테라는 잎이 아주 크게 자라는 식물입니다. 만약 잎이 구멍 없이 넓기만 하다면, 그늘 아래 작은 생명들은 빛을 전혀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몬스테라는 스스로 제 몸에 구멍을 내어, 그 틈 사이로 따스한 볕을 통과시킵니다.


나의 40대도 몬스테라를 닮았으면

성인이 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제가 정말 근사한 어른이 된다면 바로 이 몬스테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잎이 넓어질수록 그만큼의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내 몸에 구멍을 내어 아래에 있는 이들에게 빛을 건넬 줄 아는 그런 어른 말입니다.

저의 40대도 몬스테라의 잎처럼, 조금씩 구멍을 내어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는 시간을 정성껏 준비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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