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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 된 지 한 달

잘 쓰고 싶은 초보 작가

by 정민유


할 수 있는 만큼 하세요



상담센터에서 인턴상담사로 첫 내담자와 상담을 앞두고 있는 내게 소장님이 한 말이다.

50분 동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잔뜩 긴장하고 있었기에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드디어 상담실로 초보 상담사 입장!!

내담자는 상담 경험이 많은 분이었고 어리버리한 나를 보고 초보 상담자인지 눈치를 챘는지 대화를 리드해갔다.


"제가 죽으려고 창문에서 뛰어내렸거든요. 여기저기 부러지고 정신을 잃었어요.

응급실로 실려가고 정신과에 입원했었어요..."

그분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그 당시 나에겐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이야기였다.


50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난 혼이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10년이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정신이 아찔하고 부끄럽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의 상담이었으리라.

오랜 시간 공부도 하고 임상도하고 상담에 대해 고민하고 슈퍼비전도 받고

그렇게 중견 상담사가 되었던 것을..

아마 10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내가 했던 상담은 그 시기에 할 수 있을 정도였겠지..


지금은 그 말이 내 마음에 와닿는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없는 건 당연히 못할 테니까..

자기가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잘하고 싶기 때문에 힘든 거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이 되었다.

처음엔 쌓여있는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잘 쓰는지, 아닌지 느낄 새도 없이 열정적으로.

그런데 1달 정도 되니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작아지는 나를 느낀다.

뭔가 내 글은 깊이도 없는 것 같고 엉성한 것 같고

자꾸 비교하게 되고..

그래서 속상하고 낙심하게 된다.

이 나이에 왜 글을 쓴다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처음에 신나서 썼었는데 쓰면 쓸수록 기쁨이 고통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감정 또한 사랑해야 한다고 하시던데..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겠지.

하루아침에 잘 쓰게 되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건 내 욕심이라는 거 안다.

상담도 그렇게 오랜 시간의 훈련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건데..

글쓰기를 쉽게 보면 안 되지.

고뇌와 사색과 훈련을 통해서 보석 같은 글들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웃기는 건 글을 쓰자마자 다듬고 고치고 하지 않고 덜렁 발행해버리는 건 무슨 심리냐고..

어린아이가 찰흙놀이를 해서 만든 결과물을 보이며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일까?


차라리 잘 쓰는 분들의 글을 안 보는 게 나으려나..?


옆에서 잔뜩 풀이 죽어 있는 날 보며 남편이

"정 작가님 그렇게 신나서 쓰시더니 왜 그러시나요?"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 이젠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야..ㅜㅜ"

그런 날 안쓰러운 듯 바라본다.


"난 잘 쓰고 싶다고..." 결국 눈물이 흘렀다.

이래서 작가 선배님들이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하셨나 보다.

"이젠 정 작가 안 할 거야?"

"응 나 이제 정 작가 안 해!!"

그러면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남편은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했다.

그 동영상을 보니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다.

'너 언제 철들래' 우는 내 모습을 보며 또 웃음이 터졌다.

울다가 웃는 날 어이없어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난 또 쓰고 있다.


난 글쓰기에 중독되어 가는 것 같다.

어차피 글도 또 하나의 나니까 내가 먼저 사랑해줘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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