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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

안네에게 편지를 썼던 아이

by 정민유

나는 글 쓰는 데 재능이 없다.

하지만 글 쓰는데 재능이 아주 많은 (연애 초기에 그렇게 말했다가 남편이 기가 막힌 듯 웃으며 “나 작가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남자와 살고 있다.

그런데 글쓰기에 재능이 아주 많은 작가이신 남편은 도무지 책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남편에게 책을 내기를 권유하고 종용하며 심지어는 화를 내기도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런 남편이 책을 내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내게 ‘나도 글을 쓰고 싶다, 책을 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더니 심지어는 앞으로의 인생의 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얘기를 처음 남편에게 했더니 “ 당신이 책 내는 걸 적극적으로 돕겠소”라며 기뻐하며 응원해 주었다. 그 말을 하고 누워있는데 첫 문장이 불현듯 생각이 난 거다 남편은 그런 것을 ‘글이 밀고 올라온다.’라고 표현한다. 뭔가 예술가들이 영감이 떠올라서 하는 그런 행동을 따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 예쁜 일기장을 사서 그 당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일기장에 담았었다. 대부분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라든지, 외롭고 힘든 마음을 썼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치유의 글쓰기를 하고 있었던 건지도….

고등학교 때 자물쇠로 잠기는 책상 서랍이 있는 책상을 갖기 전에는 옷장 어딘가에 숨겨 놓았었다. 그런데 하루는 여동생이 그걸 찾아서 읽고는 엄마한테 일러서 혼난 적이 있다. (아마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을 짝사랑해서 그 감정을 잔뜩 써놓았던 것 같다)

이렇듯 생각해 보면 나도 글쓰기와 전혀 무관한 사람은 아니었구나….

또 조숙한 편이어서 사춘기가 6학년 때쯤 왔었다. 그 당시 [안네의 일기]를 감명 깊게 읽었다. 그리고는 안네라는 과거의 인물에 빠져서 한동안 안네에게….라고 시작하는 편지 형식의 글을 썼던 기억도 있다.

그 숨어 사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외롭고 속마음을 나눌 친구가 거의 없었던 내게 안네는 그 당시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아마도 ‘영혼의 친구’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안네는 아무리 힘든 얘기를 해도 다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안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상담사로서는 그런 역할을 이미 하는 것 같다. 상담하면서 느끼는 ‘마음의 울리는 순간의 감동’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상담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도 같다. 사실 그 아픔을 공감하다 보면 나도 소진되고 지칠 때도 많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것보다는 치유되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심리상담사가 된 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가운데 많은 내담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의 산 증인 같은 존재가 되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마음이 아픈 분들과 비슷한 문제가 있으나 용기가 없어서 상담을 하러 오시지 못하는 분들도 많으실 것이다.

내가 쓰는 글이 상처받은 누군가의 마음에 빛을 비춰줄 수 있다면….

그래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분들이 조금은 살아보고 싶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자신을 너무 미워하는 분들이 자신을 조금이나마 소중하게 대해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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