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행
해외 여행의 기회를 단 한번만 준다고 하면 나의 선택지는 고민할 것도 없이 프랑스 파리다. 이미 두번이나 다녀온 여행지이지만, 바또무슈를 타고 세느 강 주변의 야경을 느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유럽땅을 처음 밟아본 곳이 파리였다. 샤르 드 골 공항에서 빠져나와 파리 구도심에 도착하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한없이 내려앉던 눈꺼플의 무게가 순식간에 가뿐해졌다. 강가의 유람선은 르네상스 시대로 나를 데려가는 타임머신 같았다. 바또무슈에 올라타 좌우로 고개를 연신 돌려가며 세느 강을 따라 즐비한 클래식한 건물들을 구경하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무려 17년전 일인데 말이다. 이렇게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던 파리의 낭만적인 풍경은 또 봐도 설레일 것 같다. 그래서 3년만에 떠나는 해외 여행의 목적지를 파리로 정했다.
이번 여행 메이트는 우리 딸이다. 13살 아이와 단둘이 떠나는 파리 여행, 파리에서 만들어갈 우리의 추억에 떠나기 전부터 마음이 쿵쾅거렸다. 동시에 긴장도 많이 됐다. 첫번째 여행은 엄마와 함께 오면서 패키지 투어를 선택했다. 가이드의 깃발만 열심히 따라다니면 되는 여행이어서 부담감이 크지 않았다. 두번째 여행은 100일간의 유럽 배낭여행 경험이 있는 여행 베테랑 신랑과 함께 했다. 믿음직한 신랑 옆에 딱 붙어 다니기만 하면 되서, 이 때도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의 입장이 되니 이번에는 온 몸에 긴장이 바짝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짐 챙기는 일보다 더 신경쓰이는 일은 프랑스 입국 관련 기준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탓에 국가별로 입국 기준이 모두 다르니 신경쓰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성인에 관련된 입국 기준은 주한 프랑스 대사관과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에 관련된 내용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의 경험담 정도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에 따라 국가별 입국 기준이 수시로 바뀌니 남들의 이야기만 믿고 오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공식적인 기관에서 기준 확인을 해야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인터넷 서칭을 하다가 결국 프랑스 내무부 홈페이지까지 들어가보게 됐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빌려 만 12세 미만 어린이는 코로나 관련해서 서류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야 우리는 프랑스 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캐리어에 꼼꼼히 짐을 챙기고 우리는 드디어 여행길에 올라섰다.
14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샤르 드 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비고라고 하는 파리 교통카드를 구매했다. 프랑스에서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걱정했는데, 교통카드 판매 직원은 이번 프랑스 여행의 첫 인상을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교통카드 판매만 하면 그만 일텐데, 그 직원은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어디에 가서 기차를 타면 파리 시내로 갈 수 있는지 영어로 안내해주는 모습에 그동안 연습했던 프랑스 감사 인사가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Merci beaucoup” 불어에서 ‘r’ 발음에는 콧소리 섞인 ‘ㅎ’ 발음을 해줘야 한다는데 나는 도저히 콧소리를 흉내낼 수 없었다. 그대신 미소를 가득 띄우며 경쾌하게 인사를 건냈다. “멕흐씨 보꾸우”
기차에 몸을 싣고 한 정거장 정차할 때마다 지하철 노선표와 정거장에 써있는 스펠링을 대조해봤다. 혹시라도 내려야 할 역을 놓칠까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우리의 숙소 근처 역에 도착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역 계단을 어떻게 올라가야 할까 미리부터 나는 걱정이었다. 다행히 숙소로 향하는 출구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편하게 엘리베이터로 지상에 올라오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노트르담 드 파리 교회였다. ‘와아, 이번 여행 느낌이 참 좋다. 날 이렇게 편안하게 맞아주는 파리라니, 역시 나는 파리와 잘 맞는 구석이 있나봐!’
순탄하게 시작한 여행이라서 모든게 다 나랑 찰떡같이 잘 맞을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파리에서의 첫 식사는 노천 카페에서 크로아상과 커피로 시작했다. 점심과 저녁 모두 프랑스식으로 선택했다. 달팽이 요리를 먹으며 와인 한잔을 곁들이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마치 내가 파리지앵이 된 듯 황홀한 기분이었다.
내 멘탈은 충분히 파리지앵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배 속은 하루만에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행 이튿날 우리는 비상시에 꼭 꺼내자며 챙겨왔던 햇반과 스팸을 꺼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알고 인천 공항에서 유일하게 쇼핑을 한 품목이 김치였다. 아무리 이국적인 분위기를 동경해도 내 식성까지 금세 현지화할 수 없는 걸 알기에 숙소도 취사 시설이 갖춰진 레지던스형 호텔로 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 이튿날부터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엄마! 아까 먹은 스프랑 달팽이 요리도 맛있었지만, 지금 이 김치볶음밥이 훨씬 더 맛있어.”
미슐랭 셰프가 만든 프랑스 코스 요리보다 엄마표 김치볶음밥이 더 맛있다는 말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었다. 하루종일 현지식으로 느끼했던 속이 새콤한 김치를 한 점 집어먹는 순간 개운해졌다. 김치 유산균으로 배 속을 달래고나니 다시 파리 시내 구석구석을 구경할 힘이 생겼다. 해외에서 먹는 한식은 그야말로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라고 하지만 내 기준에 세계 최고의 음식은 한식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여행 6일차, 이제 여행의 반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돌아가서 김치찌개를 먹을 상상을 하고 있다. 생각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인다. 집 나오자마자 바로 집 밥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니,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남은 일정은 충분히 프랑스 감성에 빠져보자.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지….
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