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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Jun 13. 2022

나도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었다.

프랑스 여행

  나는 항상 디지털 노마드를 꿈꿨다. 노트북 한 대와 와이파이만 있으면 발리의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알프스 설산 풍경을 감상하며 일하는 모습을 늘 가슴속에 품어왔다. 굳이 그렇게 거창하게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물론 가장 행복한 상상은 경제적 자유를 이뤄 업무 부담 없이 카페든 전 세계 어디든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가 어디 쉬운 말인가? 그리고 뭐든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무료함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줄 수 있으니까, 나는 꿈의 스케일을 조금 줄여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보다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었다.


  직장 생활하는 내내 나는 사무실 붙박이가 되어 일했다. 매번 외근을 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사무실에서만 근무해도 되는 나를 부러워했다. 비가 오나, 한파가 몰려오나 업무 처리를 위해 밖에 나가야 하는 사람의 고충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나는 사무실 밖에서도 업무 수행을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부러웠다. 15년 직장생활 동안 출장 한번 가본 적이 없는 직장인이라니, 너무 무미건조한 직장생활 아닌가? 심지어 코로나로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실행하고, 아이들의 학교는 온라인 수업만 진행할 때도 나는 사무실 근무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사무실 붙박이 신세에 진절머리가 날 만도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절대 잊지 말고 챙겨야겠다 다짐한 것이 태블릿 피씨였다. 굳이 그걸 챙길 이유는 없었다. 얼마 만에 떠나는 여행인데, 유럽 분위기 여기저기를 즐겨야지 태블릿 피씨를 켜고 영상이나 보고 있을 틈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도 디지털 노마드가 된 듯 로망을 실현하고 싶어서 무겁지만 태블릿 피씨에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가방에 챙겨 넣었다. 얘네들 때문에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품목들은 공항 보안 검색대를 지날 때마다 가방에서 꺼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로망 실현을 위해 이 정도 번거로움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원래 계획은 매일 일정을 마칠 때마다 그날 떠오르는 단상들을 블로그나 메모장에 기록하고 싶었다. 마치 그곳에 사는 사람처럼 파리의 작은 숙소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 기록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최소 1만 5 천보 이상을 걸으며 파리 시내 곳곳을 누비고 나니 숙소에 들어오는 순간 내게 남은 체력이 없었다. 나의 태블릿 피씨는 5박 6일 내내 숙소의 금고 안에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여행의 반이 지나고 나는 지역 이동을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남프랑스로 향하는 떼제베 열차였다. 파리에서부터 니스까지는 기차로 약 6시간 정도 소요됐다. 파리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펼쳐지는 끝없는 밀밭을 감상하느라 처음에는 넋이 나갔다.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한 농업 현장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생경하다못해 신기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여름철 모내기하는 논과 가을날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벼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마음이 이와 비슷할까?



  액자같이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보는 일도 한두 시간 지나니 감흥이 줄어들었다. 가도 가도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걸 보니, 프랑스는 가히 농업국가가 맞구나 싶었다. 나는 가방 속에서 태블릿 피씨를 꺼냈다. 파리 리옹역에서 사 온 달콤한 구움 과자를 한 입 베어 문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리 글감을 준비해두지도 못한 채 두서없이 적어 내려 가는 글이었다. 하지만 유럽 열차 안에서 글을 쓰는 그 순간의 감정이 내게 말할 수 없이 큰 쾌감을 줬다. 마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올 한 해 스스로에게 부여한 일이 있다. 브런치에 매주 1회 글을 발행하는 미션이다. 내가 제대로 미션 수행을 했는지 체크하는 사람은 없다. 그걸 안 했다고 나에게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글을 쓰나 안 쓰나 내 수입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하지만 나 자신과 약속한 일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 글쓰기가 요즘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 일을 집이 아닌 먼 유럽 땅에서 수행하고 있다니…. 오랜 세월 동안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었던 갈망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아준 것 같았다.


  현재 나는 주부이자 아이 엄마이다.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내게는 일터를 떠나는 시간이다. 그 순간을 단순히 휴가나 여가 시간으로만 즐기고 싶지 않다. 그 때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지켜내고 싶은 일을 병행하고 싶다. 어쩌면 나는 잠시라도 한량으로만 지내기에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야 불안하지 않고,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도 촘촘하게 세워둬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람 성격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니 여행 스타일도 내 성향에 맞춰야 여행의 만족감이 올라가나 보다.


  이번 여행은 그저 디지털 노마드 컨셉 놀이였을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꿈을 꼭 이루고 싶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내 일을 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 자기 계발을 하고, 시장분석을 하며 꿈꾸는 내일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나가고 싶다. 진짜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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