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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리나 Mar 01. 2024

혼자 지내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싱글 인 서울

오랜만에 참 기분이 좋아지는 한국 영화 한 편을 봤다. 이동욱과 임수정, 두 선남선녀의 분위기 있는 포스터에 끌려서 보게 된 <싱글 인 서울>


영호(이동욱)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잘 나가는 논술 강사다. 동시에 그는 혼자 먹기, 혼자 놀기, 혼자 쉬기 등 혼자 사는 노하우를 sns에 공유하는 파워 인플루언서이다. 영호는 싱글이지만 모태 솔로는 아니다. 오히려 ‘못해 솔로’라는 별명을 달고 다닐 정도로 줄연애를 하던 사람이었다. 여러 차례의 연애 끝에 입은 상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그는 자발적 싱글을 택했다. 싱글이 된 이후에 찾아온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즐기며 화려한 싱글남의 삶을 살아가던 영호는 어느 날 글을 쓰게 된다. 선배의 부탁으로 싱글 라이프를 담은 책을 내기로 한 것이다.


현진(임수정)은 영호가 쓰기로 한 책의 편집장이다. 현진 역시 싱글이지만, 그녀는 항상 연애가 고프다. 연애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까지도 영호와는 참 다른 그녀였다. 이런 둘이 작가와 편집장으로 만났으니 부드럽게 일이 진행되는 날이 없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 소소한 의견 대립부터 예상치 못한 대형 사건까지 벌어진다. 자세한 영화 이야기는 앞으로 관람하게 될 분들을 위해 아껴둔다.


서로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지니고 있지만 나에게 영호와 현진의 생활은 모두 부러울 뿐이었다. 한강뷰 야경이 쫙 펼쳐지는 멋진 집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며 글 쓰는 영호의 모습은 나의 로망을 담아둔 광경과 똑 닮았다. 홀아버지의 재혼으로 갑자기 독립할 집을 알아보는 현진이도 부러웠다. 새로 구한 집에서 내 취향껏 나만의 공간을 꾸밀 생각을 하면 얼마나 설렐지 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 밑에서 지내다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난 항상 누군가와 함께 했다. 한 번도 외로울 틈이 없어서 감사했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지내보고 싶다는 바람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물리적 자유만 누리지 못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결혼, 출산과 함께 형성되는 다양한 관계는 때로는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둔다. 한 세트 더 늘어나는 가족 관계는 든든함과 함께 부담감을 주기도 한다. 내 친구 만날 시간도 부족한데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까지 신경 써야 할 때는 보통 피곤한 게 아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물론 내 선택은 지금과 같겠지만 가끔 혼자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가족을 위해 쓰는 시간, 돈, 열정을 온전히 나에게 쏟아붓는 상상을 하면 탈출에 성공한 짜릿한 기분이 든다.


수시로 일상 탈출을 꿈꾸는 아내이자 엄마인 나에게도 가끔은 숨통 트이는 나만의 공간이 펼쳐진다. 교통, 치안, 층간소음 그 어느 것 하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있다. 심지어 임대 계약이 필요하지 않다는 아주 큰 장점도 있다. 바로 나의 글방이다. 이곳에서는 뭘 해도 나를 간섭하는 이 하나 없다. 꽃 이야기, 육아 고충, 경제 스터디 요약정리 등 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 나에게 가장 편안한 시간에 글을 마련하고 응접실을 열어두면 이따금씩 글친구들이 놀러 오곤 한다. 식구들한테 허락받을 필요가 없고, 약속 시간을 번거롭게 정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만남을 이뤄갈 수 있다. 온전히 내 취향껏 꾸밀 수 있는 곳, 누가 와서 내 물건을 멋대로 흐트러트리지 않는 곳, 나만의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이곳이 있어서 참 좋다.


일이 많다고 휴일이지만 남편은 출근했다. 자도 자도 졸리다는 사춘기 아이는 낮잠을 자느라 방 안에서 조용하다. 모처럼 강아지와 나란히 누워서 마음 촉촉해지는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이내 떠오르는 감상을 작은 책상에 앉아 끄적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본다. 엄마, 아내, 딸, 사회인으로서 다양한 역할에 신경 써야 하지만 하루 중 잠시라도 고요히 나만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하다. 나는 이렇게 오늘도 나만의 싱글 라이프를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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