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써지는 마법

by 푸른새벽

요즘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가 참 어렵다. 지난 글을 발행한 지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이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이 그랬다.). 서랍에 저장된 글이 없는 것도 아닌데 퇴고할 의욕도 사라지고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루틴은 추출되는 거라고, 글쓰기 루틴이 잡힌 것처럼 글 한편을 뽑아놨는데 글쓰기 루틴은 다시 오리무중이다.


왜 이렇게 글 쓸 시간 확보하기가 힘드냐고, 나는 글을 쓰면 안 되는 거냐고 원망하는 듯한 기도를 드리는데 왜 글을 쓰고 싶은지 나지막이 물어오시는 듯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순간, 그 장면을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풀어냈던 글이 떠오른다.


‘하나님, 오늘 언제 계셨어요?’


주님의 응답을 잠잠히 기다리는데 문득 첫째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처럼 둘이서 도서관에 들렀다.

“첫째야, 우리 4시 반에는 나가자.”

둘째, 셋째를 데리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오랜 시간 있을 수 없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나가려는데 그제야 빌릴 책을 찾는다며 첫째가 종종걸음이다. 마음이 급한지 끙끙대는 소리도 새어 나온다.


오늘 언제 계셨냐고 물으니 첫째의 짠한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짠해서 한참을 울컥하다가 다른 마음으로 또 울컥하는 것은 억울한 마음이다.

‘하나님, 저는 안 짠해요? 아이들은 짠하고 아이들이랑은 함께 하시는데 저는요? 저 요즘 힘들어요.’

아이들은 사랑하고 나는 안 사랑하냐고 따지는 물음에 첫째를 향한 짠한 마음이 나를 향한 마음이라고 하신다. 첫째의 신음을 들으셨던 주님이 같은 마음으로 나의 신음도 들으셨다고. 나의 울음도 들으셨다고.


육아란 주님이 하시는 신비한 일이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먼저 알아야 그 사랑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사람의 논리라고 하신다. 아이를 먼저 사랑할 때 하나님이 그렇게 나를 사랑하심을 알게 된다. 내가 아이 옆에 털썩 앉아서 아이를 바라볼 때 하나님이 그렇게 엄마인 내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보시는 사랑을 깨닫게 하신다. 아이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엄마인 나도 사랑하시냐고 여쭸을 때 떠오르게 하신 것은 온통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다. 내가 아이를 바라본 시선으로 그렇게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그리고 그러한 주의 사랑으로 내가 아이를 사랑했다고 확증해 주신다.



뭔가 알아야, 깨달아야 글을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글 쓰려는 걸음이 부담이 되고 더뎠다. 그런데 주의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알아야 쓰는 게 아니라 쓸 때 깨닫게 하신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앉기만 하라고. 그때 온종일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또 전하게 하시겠다고. 그렇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정말 맞았다. 글쓰기란 순간을 장면이 되게 하는 마법인 줄 알았다. 아니다. 믿는 자의 글쓰기란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그 순간을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시는 자리에 그저 앉는 일이다. 루틴 속에 있는 어떤 일이 아니라 그저 앉으라고 하실 때 어깨에 힘을 빼고 앉는 일이다. 풀어내시는 그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보게 되는 일, 그래서 저절로 써지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