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낮, 공깃돌이 굴러가는 소리와 아이들이 굴러가는 소리로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공기놀이의 재미를 알게 된 아이들과 편을 갈라 단체전 중이다. 첫째와 아빠가 한 팀, 둘째와 엄마가 한 팀, 막내는 막간을 이용해서 엄마랑 공깃돌로 놀고.
중간중간 점수를 내는 꺾기 타임에는 손에 땀이 난다. 아빠가 공깃돌을 놓치면 둘째는 환호성을 지르고, 첫째는 안타까움에 데굴데굴 구른다.
작은 교회에서 찬양인도자와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는 우리 부부는 월요일에 온 가족이 안식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물론 아빠가 교대근무를 하고 있고, 아이들은 홈스쿨링 중이라 평일이 안식일이 될 수 있다.
30점 내기로 시작한 것이 50점 내기, 점심 먹고 나서는 100점 내기까지 갔다. 경기가 과열되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100점 내기를 하자고 조르는 소리에 피곤을 느끼면서도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공깃돌이 점점 손에 붙어서 엄마가 흥이 나더니 그만 너무 많은 점수를 내버렸다. 첫째가 결국 경기중단을 선언하고 이불 위로 얼굴을 묻어버렸다.
시간을 들일 때 좋아하게 된다는 구절을 어느 책에서 읽고 메모해 놓은 것을 보았다. 천상 엄마일 수밖에 없는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지 긁적여 놓은 것이다. 나는 오늘 무엇을 좋아하기 위해 시간을 들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시간을 들여 아이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다. 시간을 들여 아이의 환호성, 아이의 땀, 아이의 웃음이 터지는 순간을 발견하고 싶었다. 아이를 ‘발견’ 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싶었다. 단순히 놀아주는 것을 넘어서.
아이가 마음이 상하고 나서야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의 눈빛, 입매, 똑 떨어지는 눈물. 발견되는 모든 것이 마냥 좋은 순간은 아닐지 모른다. 발견되는 것 중 어떤 것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끄러워지는 순간일 때도 있다. 아이가 속상해하는 장면은 그렇게 아이를 알아가는 순간들 중 하나이고, 또 아이를 기다리면서 아이를 발견할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란 어쩌면 아이의 예쁜 모습, 가슴 벅차게 사랑스러운 모습만 마주하기보다 떼쓰고 난리 치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매일, 시간을 들여 성실하게 마주하는 일에 가까울지 모른다.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작은 걸음들을 걸어낼 때,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씀이 삶 속에서 영글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