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하는 것이 성격상 여러모로 편한데 함께 여행하게 될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이 그랬다.
빠듯하게 살다가 퇴직금으로 조금 여유로워진 김에 아등바등 살지 말고 당분간 여유를 누려보자는 다짐을 했다. 그래봤자 생활비 규모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그동안 아이들과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가족여행을 좀 다녀보자 싶었다. 홈스쿨링을 하는데 아빠까지 올해부터 교대근무라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나서 계획한 첫 여행이 갯벌체험이다. 갯벌 하면 보령머드팩? 만 떠오르는 우리 부부는 말로만 들어봤던 갯벌로 가보자고 얘기해 두었다. 따고 잡고 모으는 것은 기가 막히게 좋아하는 수렵채취형 우리 아이들은 갯벌 가서 조개 잡자는 얘기에 환호성을 질러대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
꽤 먼 곳으로 펜션까지 예약해 두었는데 출발 며칠 전 갑자기 시어머님이 마음에 쓰였다. 시할머니 요양원에 다녀오신 후로 울적해지셔서 눈물까지 보이신다. 어떻게든 기분전환을 시켜드리고 싶어졌다. 대뜸 어머님도 같이 모시고 가자 신랑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끼리 여행이 아니라 ’함께 여행‘이 시작되었다.
내가 신랑에게 부탁한 일이고 계획은 우리가 한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분명 어머님을 위해 따로 계획해 두신 일이라 확신했다. 어떻게든 어머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리는 일은 조심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러다 보니 출발일이 다가오자 이것도 걱정, 저것도 신경 쓰여 마음이 불편해져 온다. 내가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러다 다시 이번 여행은 오직 어머님을 위해서!라고 다짐하며 출발일이 되었다.
출발당일 아침 치통 때문에 급하게 치과를 다녀온 둘째는 또 신경치료를 해야 된다고 한다. 예약 없이 간 터라 치료를 미루고 나오는데 출발하기 전부터 한숨이 나온다. 여차저차 출발했는데 둘째의 옥수수 타령에 어머님이 휴게소에 들르자 하신다. 계획에 없던 거한 식사에, 심지어 근처 아웃렛에서 둘째의 신발타령으로 첫째, 셋째까지 할머니를 졸라 신발을 얻어 신는다. 계획에 없던 지출이 계속 생기자 마음이 불편해져 온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갯벌로 향하는데 물이 많이 높은 날이라 잘 안 잡힐 거라고 펜션사장님이 걱정하신다. 정말 가봤더니 갯벌체험 영상에서 봤던 갯벌상태와는 조금 다르다. 호미질할 때마다 물이 고여든다. 근처 인천도 있는데 굳이 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불평이 입 밖으로 막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래도 신나게 호미질하는 어머님을 보고 다행이다 싶다. 아이들도 기대했던 맛조개는 구경도 못했지만 동죽이라도 실컷 캐느라 신났다. 날씨가 흐려 빗방울까지 하나둘 떨어지는데 엉덩이를 떼질 않는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서 바비큐를 하려고 보니 바베큐장이 블로그와 너무 다르다. 심지어 숯불도 아니고 번개탄이라 고기 굽는 신랑만 눈 따갑게 불 앞을 지키고 가족 모두 숙소로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캐온 조개를 빠르게 해감해서 해물라면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캐온 조개가 하필 동죽이라 해감이 오래 걸린다. 해물라면도 물 건너가고 그냥 라면이다. 바베큐장이 환기가 너무 안된다, 그릇이 너무 더럽다, 베개에서 냄새가 너무 난다, 어머님이 그러시니 이번 여행은 망했나 싶었다.
대충 먹고 다 같이 보기로 했던 영화를 보는데 처음부터 기대가 크진 않았지만 역시나 별로였다. 첫째는 “축구나 더 볼 걸 그랬어”, 어머님은 피곤하셔서 졸다가 깨셨다. 진짜 망했나 보다.
갯벌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던 비는 밤새 거세게 내렸다. 밤바다 파도치는 소리 들으며 잘 생각 하나 붙들고 왔는데 그것마저 물 건너갔다. 겨우 잠들었다가 새벽부터 우는 닭소리에 무서워하는 막내를 달래다 깨어보니 날씨가 너무 화창하다. 체크아웃하고 내려가는 길에 어머님이 노래 부르시던 꽃게탕 식당을 찾았다. 죄다 게장집 밖에 없어서 겨우 찾은 식당인데 다행히 어머님이 만족스러워하신다.
날씨만 보면 정말 하나님이 계획해 두신 여행길이었다. 내려가는 길이 화창했다. 추울 거라 걱정했던 갯벌은 적당히 선선하고 먹구름이 해를 가려줘서 조개 캐기에 좋은 날씨였다. 그리고 밤새 비가 내리고 개인 하늘은 올라가는 길 내내 그렇게 화창할 수 없었다. 날씨만 보면 정말 축복된 시간인데 뭐 하나 계획대로 된 것이 없었다.
이런 곳으로의 여행이라면 그래도 하늘 한 번 더 보고 바닷바람 한 번 더 쐬어주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할머니를 옆에 딱 끼고 세 아이 모두 여행 내내 유튜브와 TV 삼매경이었다. 엄마인 내가 그런 부분에 예민하게 굴 때 어머님이 얼마나 마음 불편해하시는지 알고 있으니 여행 전부터 어머님께 무조건 맞춰드리자 싶었는데도 아이들이 그러는 모습을 보니 내내 TV 볼 거면 여행을 왜 왔나 싶은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틀대로, 내 고집대로 되지 않으니 함께 하는 여행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사실 여행지의 컨디션보다 더 내 마음을 흔든 것은 그것이었다.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야 되나 보다 하기 전부터 주님이 주신 마음 한 조각이 있었다. 이제는 나만 위하는 일, 내 가족 위하는 일만 하며 사는 삶은 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럴 때 어머님을 마음에 품게 하셨으니 어머님을 위한 여행을 가야겠다 싶었다. 순종했으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계획대로 된 일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나 혼자 가는 여행이 더 편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좋은데 왜 꼭 같이 가야 하나요? 그런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제 눈에 보이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삶을 그만두라고 하신다. 내가 불평한 여행지의 컨디션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여행이란 함께 하는 사람이 좋으면 어디든 다 좋은 곳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함께 하는 여행’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을 깨닫고 발견하기 위해 가는 여행이라고 하신다.
여행을 가면 하늘 한 번 더 보고 산, 바다 한 번 더 눈에 담는 게 최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은 그분의 손으로 만든 것 중에서 무엇보다 ‘사람’을 보라고 하신다. 낯선 곳, 무언가에 집중하기 가장 좋은 그 낯선 곳에서 시선을 두어야 할 곳은 함께 여행을 간 그 ‘사람’이라고.
갯벌에서 물이 너무 많아 맛조개를 구경도 못하게 되고 아이들은 맛조개 찾는다고 아빠랑 멀리멀리 나아갈 때 어머님은 아이들을 위해 굳이 따라가지 않으셨다. 그냥 그 자리에서 혼자 조개 캐시겠다며 도구, 장비 잘 챙겨서 신나게 호미질을 하셨다. 그런 어머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동죽을 열심히 캐시고 있으니 둘째가 여기저기 구경 다니다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도란도란 조개를 캔다.
어머님의 육아관과 아이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다. 숙소에서 미디어 문제로 내 마음이 쉽지 않았던 것도 여전히 그런 시간들의 여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함께 여행을 다녀와서 어머님에 대해 발견한 후 드는 생각은 어머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 이것저것 제한하는 나와는 달리 어머님은 이것저것 다 허용적이시다. 못하게 할 때 아이들은 더 엇나간다고. 누가 옳은지 따지느라 어지러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뭐가 정답인지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어머님은 그런 사람, 좋은 사람이니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즌을 주시는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런 때에는 지경이 넓어질 때도 있고 내가 넘어서지 못하던 영역을 넘어서게 하실 때도 있으며 실제로 아이들이 자라고 엄마인 내가 성장하는 시간을 지나기도 한다. 요즘이 그러하다. 새로운 시즌을 지나는 중이다. 이제 혼자만 위하는 여행이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고 영혼을 발견하는 ‘함께 하는 여행’을 하라고 하신다. 육아가 그러한 여정이라면 이제는 정말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발견하고 누리게 하시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