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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때론 포기할 용기도 필요하다

by flowbella





한 우물을 오랫동안 파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무언가를 오랜 시간 동안 파고들고 전념하여 완성한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마주했을 수많은 시행착오와 자신에 대한 의심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이 길이 정말 맞는 걸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의심이 되는 마음을 극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에는 다시 우물 앞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내며 결국 성공으로 끝맺는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세상 가운데에서 홀로 우뚝 선 고목처럼 시간을 관통해 굳건히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순수한 꿈을 실현하고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내 자리를 완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예측하고 계획한 대로 안정적인 경로로 따라갔다면 결코 생각할 수 없었을 방향에서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삶은 흘러갔다.


인생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보다 더 큰 그림을 바라보고 있나 보다. 어쩌면 나의 의지와 바람대로만 인생은 흘러가지 않으며, 때론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수한 염원마저도 내려놓아야 하는 때가 있음을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성찰과 깨달음을 얻어야만 '가능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다 다양한 관점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은 삶을 바라보는 수많은 다양한 관점 중 극히 일부의 것이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 옳은 줄 알고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역시 넓고, 다양한 세계와 관점이 존재하며 그들이 서로 어우러지고 엮이면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해서 반대쪽은 항상 틀린 것이 아니었다. 때에 따라서는 둘 다 맞으면서도 둘 다 틀릴 수도 있었다.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은 이 세상의 단단한 버팀목으로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회는 그런 존재들에게 의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다양한 영역과 세계를 넘나들면서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의 공통점을 찾고, 서로 연결하는 역할도 필요로 한다.


이 세상에서 쓸모 있게 여겨지는 자리, 인정받을만한 자리는 어느 한 가지 방향에만 있지 않다.

좀 더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나니 인생은, 그리고 세상은 어릴 적 꿈을 꾸며 멋진 어른을 동경했던 어린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고, 깊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그동안 익숙하게 믿고 있었던 길에만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중도 포기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울적하고 죄책감도 들었지만 나의 인생의 자리가 이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변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살다 보면 때론 내 길이 아님을 직시했을 때 아무리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더라도, 그 누구도 나를 공감해주지 못하더라도 툴툴 털고 일어나 뒤돌아 걸어 나오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든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는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내 마음이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결정이 완성되는 그날, 내가 왜 안정적이라 믿었던 경로에서 탈선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그날, 이 모든 선택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일단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직진하는 수밖에 없다.










이 글을 끝으로 '삶을 해석하는 옥스포드 아몬드'의 연재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다음 책은 또 다른 시리즈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제 생각을 글로 적어서 공유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정말 놀랐고, 감사했습니다.


약 두 달 전만 해도 확신이 없었지만 이 책을 연재하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확고해졌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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