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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감정에 대하여

기분이 울적하네, 그냥 울어야겠다

by flowbella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기분이 울적해지는 날이 있다.

슬럼프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급한 마음과는 달리 주변 상황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럴 때 아무 생각 하지 않으려 한다. 이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의 이유를 찾아 꼬리표를 달지 않고 그냥 그 우울과 불쾌의 어두운 감정 속에 나를 남겨둔다.


그러면 침몰하는 느낌이 든다. 어디가 끝인지를 모르고 계속 어두운 저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모를 화가 나기도 한다. 그게 나인지, 세상인지도 불명확하다. 그냥 화가 날 뿐이다.

어쩌면 생명을 갖고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이유 모를 반항 같기도 하다. 살아있기 때문에 이 아픔과 고통, 불편함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견디고 있다는 생각을 멈추고 응어리진 어두운 마음을 실타래 풀듯이 한가닥 한 가닥 풀어내는 상상을 한다. 투명한 물에 내 응어리진 슬픔, 고통, 분노를 물감 풀듯이 풀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끝까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하염없이 놓아주고 나면 명치끝부터 조금씩 잔잔한 개운함이 느껴진다. 꽉 차서 고여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해소된 것 같아진다.


예전에는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직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감정과 기억을 자꾸 붙잡아두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힘들수록 기분 좋은 상상을 하거나 즐거운 감정이 담긴 노래를 듣고, 영화를 봤다. 그리고 웃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방법이 꽤 잘 통하는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긍정적인 바이브가 내 상태에 동해서 조금은 감정이 풀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 방법이 통하진 않았다. 근본적인 해소를 위해서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부정적인 '감정 자체'를 바라보고 자꾸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혼자 펑펑 울거나, 글을 쓰거나, 가끔은 그 감정 자체를 눈싸움하듯이 끝까지 직면하면서 저 밑바닥까지 비워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은 내가 원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불쾌한 감정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당연히 내 마음대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좌절하고 외면당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마음에 힘을 주고,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가 뻣뻣해진다면 내 마음은 이리저리 치여서 불쾌한 감정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세상이나 타인을 탓하게 될 때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부정적인 감정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 내가 또 내 마음대로 하려고 애썼구나.' 생각하고 그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준다.


진정한 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가득 차서 나 자신이나 누군가, 심지어 사물과 자연까지도 탓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나서 평온한 상태의 내가 ‘진짜 나’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때그때 생겨나 고일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잘 해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꾸 좁은 틈으로 보려는 마음을 거둬내고 그 좁아진 시야의 관점과 판단에 마음이 붙잡히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좁은 관점이 만든 ‘기준대로’ 되지 않아서 슬프고, 괴롭고, 화가 나는 감정을 거둬낸다면 ‘새로운 관점’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시야를 넓히고, 더 나아가 자신 안의 기준과 판단에 붙잡히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더 가뿐해질 것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가려진 나의 모습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며 헷갈리거나 괴로움을 가중시키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덧칠해진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생긴 부정적인 감정들을 한 겹 한 겹 흘려보내고 진짜 나의 평온한 상태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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