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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불 Jan 01. 2021

상담에 파묻혀 살던 날들

살기 위한 몸부림


힘들기만 한 나의 삶을 어떻게든 위로 받고자 발걸음한 상담 속에서 나는 내 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꺼내도 꺼내도 끝이나질 않는 내 안에 어려움들을 개인상담, 집단상담, 학술동아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풀고자 했고, 그때의 시절의 나는 내 생애에서 최고로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상담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졸업하는 순간까지 센터 내의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의 끈을 놓지 않았고, 학과 내에서 내주는 과제에도 정말 열심히 임했다. 나에게는 그저 교수님께서 내주시는 과제가 아닌 나를 알아가기 위한 과제였다. 집단상담과목을 수강하며 참여했던 집단상담 속에서 자기성장보고서를 누구보다 열심히 작성하여 A+를 받았다. 학기수업이 끝나면 마라톤 집단상담도 참여했다. 졸업 후에 본가에 가게 되면서 위탁가족 내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인해 나는 또 다시 상담을 찾았고, 성폭행 트라우마가 갑작스럽게 재발되어 또 다시 상담을 찾았다. 그렇게 끝도 없는 상담을 받아가고, 심리학을 공부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어갔다.



그때 나의 목표는 내 안의 감정들을 인지하는 거였다. 항상 억압만 하고 인내하며 살아온 인생이라서 분명 너무나도 힘든데 내가 무엇때문에 힘든지 모르겠고, 내 안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이 감정들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렇게 방치해두다가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빵 터져버리면 나는 그저 눈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내가 왜 우는지도, 왜 아파하는지도, 무엇이 나를 이리도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 채로 울었다. 울고나면 속은 시원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하니 반복되는 패턴으로 인해 더 힘겨운 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원인을 알기 위해 나의 과거를 파헤쳤고, 나의 감정에 집중해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담을 통해서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상담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거라 생각하고 내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해결되는 듯 하면서도 해결되지가 않았고, 나아지는 것 같으면서도 제자리 걸음이었다. 상담 받으며 무언가가 바로 해결되기 보다는 우연히 겪는 외부사건을 통해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져서 알게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에피소드를 상담을 받으며 풀어나갔다. 어쩌면 상담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마음가짐자체가 비현실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상담자도 나와 같은 사람이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디에 반응하는지는 대화를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수차례 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은 것은 나의 진행속도에 따라 쿵짝이 잘 맞는 상담자가 존재하고, 모든 상담자와 궁합이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회기는 느리게 가길 원하고, 어떤 회기는 진도를 훅훅 나가기를 원하는데 거기에 잘 맞춰준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다. 결국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나를 알아주는 작업들과 다양한 심리이론을 나에게 시도해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셀프상담이 가장 편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가장 아프고, 가장 위험하다. 모든 과정을 나 홀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괜히 슈퍼바이저가 있는 것이 아니고, 괜히 동료가 있는 것이 아니고, 괜히 상담사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나 스스로 셀프상담을 진행하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았다. 그때 당시 계속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때마침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해주는 방법들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런 작업들을 해나가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셀프상담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여러차례의 상담경험과 심리학에 대한 공부, 그리고 나에게 적용함과 동시에 검토, 마지막으로 그것을 기록해 나가면서 자기성찰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빠졌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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