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실패란 없다

난임 시술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by 도시오리

엄마는 미국에 가거들랑 이제 그만 아이 생각하고 공부를 하거나 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보라고.


난임시술을 7여 년 동안 하면서 너무 큰 희생을 하고 인생이 멈췄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표면적으로나 물리적으로는 잃은 것만 있는 것 같았다. 휴직을 하며 승급도 늦어지고, 대학원도 포기하고, 이직도 포기하고... 남편과 싸우면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시간이 많으니 진짜 따져보기로 했다. 난임시술을 안 했으면 난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이거 진짜 시간낭비기만 했을까?

지난 7년의 과정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 대부분 순탄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교훈이었다. 두 번째는 남편과의 관계. 남편과 한 번은 병원을 가는 길에 크게 싸우고, 그 싸움이 거의 이혼의 위기에 갈 뻔했다. 매일 나만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은 상황에 쌓이고 쌓이다 얼토당토 아닌 일에 그만 불똥이 튄 것이다. 거의 한 달 만에 화해를 하고 내린 결론은 시험관을 그만하자는 것이었다. 아이를 갖는 것은 남편과 나의 사랑의 결실이지, 아이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게 몇 달을 쉬다가 내 의지로 다시 시작했다. 그래,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큰 교훈을 얻은 것도 돈으로 살 수 없는 보석이다.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면서 7년 동안 한 번도 나에게 푸시를 한 적 없고, 아이 없이 살아도 되니까 이제 너를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준 것도 너무 고맙다. 세 번째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 이제 그만하라고 말한 시어머니, 힘이 된 동서 부부, 함께 기도하고 울어준 동료들. 그리고, 말해 뭐 해. 우리 가족. 내 취약성을 보이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교훈을 주었다. 나도 가족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잃은 것도 있다. 언젠가는 이 복잡한 과정과 감정을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브런치 일기장이 되는구나.

나는 친구.. 를 잃었다. 가장 친한 줄 알았던 친구 두 명과는 미국에 와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게 됐다. 세 명이 매일의 일상을 나누던 대화방인데 난 어느 순간 대화를 읽지 않고 그리고 반년쯤 후에 대화방을 나왔다. 그 친구들은 지금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려나 궁금하긴 하다. 나는 세 명 중에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결혼생활, 난임의 힘듦을 친구들과 시시콜콜 공유하지 않았다. 특히 그 방에서는 더욱. 한 명을 결혼을 너무 하고 싶던 아이고, 한 명은 결혼 생각이 없던 아이라서 내 결혼생활과 난임 이야기가 그리 와닿지도 않을 거고, 또 어떤 면에서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는 달랐다. 결혼의 모든 과정을 공유하고, (힘들었다. 드레스샵/웨딩홀/촬영을 고르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듣고 반응해야 하는 것까지는 참았다. 그리고 허니문 베이비 소식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줬던 기억이 난다. 난임을 오래 겪으며,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을 함께 기뻐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슬펐으니까. 그런데, 그 친구는 임신을 하고, 정말이지 매일 같이 대화방에서 임신 얘기만 했다. 힘든 입덧을 겪고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그것도 미국에서 듣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질투인지 피로감인지 제대로 해석하기도 힘들었다. 난 그저 내 정도의 배려를 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난임으로 힘든 친구에게 못할 말이라는 생각까지는 아니더라고 임신을 하지 않은 친구에게 매일매일 그 얘기는 배려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차로 밀려있는 단톡방에서 기승전 그 친구의 입덧과 임신 얘기로 끝나는 대화를 봤다. 참았다. 그리고 그 친구가 갠톡으로 물어보는, 어떤 의도인지 모르겠는 이야기들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지만, 그것도 참았다. "내가 남편한테 물어봤는데 미국에서 애 낳는 주재원은 본 적이 없다더라" "나도 한창 원정출산을 알아봤는데 병원비가 너무 무섭더라".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톡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거슬렸지만 들어줬다. "신혼여행은 뉴욕 가려고 했는데" "야 너 얼마나 좋아, 거기 거기 가봐 좋던데" "임신해서 해외여행도 못 가고 이게 뭐냐" 이 역시 할 수 있는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미국 물가 괜찮냐고 걱정해 주는데, 그 친구는 "야 근데 현실물가 생각하면 한국이 더 팍팍해"라는 말에 우리는 더 이상 대화가 힘든 사이가 돼버린 것 같았다.


"애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나"라는 서운함에서 "아.. 그래 내가 이제 더 이상 네가 친구가 아니다"라고 생각이 바뀌면서 더 이상 이런 거슬리는 대화를 받아주는 대신 침묵을 택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몇 달 후, 나는 아무 말 없이 대화방에서 나왔다. 구구절절 말한 적은 없지만, 내 난임을 함께 울어주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후였던 것 같다. 그 친구들에게는 내가 무엇이 화가 났고 서운한 지 말하지 않고 그냥 난 사라졌다. 그런데 그 두 명 역시 대화방은 왜 나갔냐,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딱 그 정도의 우정이었겠지. 내가 임신한 그 친구를 질투해서 그렇다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그 대화방을 나온 이후에, 일상을 시시콜콜 나누는 대화방은 없지만, 그게 내 정신건강에 훨씬 더 도움이 되는구나. 20년 가까이 되는 우정을 일방적으로 잘랐다는 죄책감에 한 동안 많은 악몽을 꿨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 더 참고 그 친구의 임신 과정을 들어줄 걸 그랬나,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결심한 이유는 하나이다. 임신과정뿐만 아니라, 그 친구의 그런 허영과 투정에 20년을 매일 같이 노출돼 있었던 게 힘들었던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결정이 맞는지 모르겠다. 다른 친구와는 공동의 친구라는 대상에 대해서 험담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둘을 남겨두고 내가 나왔다. 남아있는 지금의 친구들은 그 결정이 맞다고 지지해 주지만, 여전히 죄책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그 관계가 그리운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도 길게 썼다는 건 내가 이 일기장에 자기변명을 하고 있는 거겠지.


"난임은 친구와 가족의 기쁨도 온전히 축하해 줄 수 없다"라는 말을 병원 대기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임신 소식을 나에게 숨기고 눈치를 볼 때 저 말이 항상 생각났다. 누군가의 행복한 순간을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구나.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그 친구와 연락을 끊으며 악몽을 꿀 정도로 힘들었던 이유는 결국은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됐구나 하는 허탈감과 자기 실망이 가장 큰 것 같다. 직접 말할 기회는 없지만, 그 친구의 임신과 출산은 정말 축하하고 이 말을 전하지 못한 점은 미안하다.


결론은 오랜시간 난임시술은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게 했다. 경력, 돈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기다림, 실패를 뒤로한 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