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

장발장과 법

by 무지개 경

어느 신문 칼럼에서 '장발장은 100% 희생자인가'' 라는 표제를 보았다. 대개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부패하면 소외되고 빈곤한 사람이 많아지고 사회에 불만이 쌓여 범죄가 늘어난다. 물론 사회가 아무리 불공평해도 개인의 죄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문제는 과연 죄 값이 공정한가이다.


장발장도 처음에는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그가 빵을 훔친 것은 어린 조카들이 굶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해서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빵을 훔칠 때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5년형을 받았고, 그 후 계속 탈옥을 시도해 결국 19년의 형을 살았다.


생각해 보면 빵 한 조각 때문에 19년의 형벌을 받았다고 하면 소설이지만 너무 과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장발장이 받은 징벌이 억울할 수는 있지만 부당한 것은 아니다. 주인 입장에서 볼 때 누군가 자신의 가게에 무단 침입하면 당연히 두려움과 적의를 느낀다. 죄인이 탈옥을 하면 법 질서가 파괴돼 타인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법이나 제도로 모든 것을 재단하면 세상은 너무 삭막해질 것이다. 언젠가 편의점에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젊은이를 주인이 너그럽게 용서해 주고 경찰관은 라면 등 생필품을 조금 사주어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었다. 이처럼 어느 시대나 미리엘 신부 같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 따뜻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미담이 많아질수록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법이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회 정의를 수호한다는 원론적인 의미가 무색해지고,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당연시되는 세태가 될 때, 또 법이 힘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때 장발장 같은 희생자가 생길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맹목적인 온정주의는 불공평한 사회를 바꾸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장발장이 소외되고 빈곤한 우리의 모습일 때 그가 받은 징벌이 부당한 것처럼 여겨지고 권력의 폭압성은 더욱 부각된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라고 외치며 죽은 소크라테스의 용기 있는 말처럼 비록 불완전하지만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법이다. 장발장은 모순되고 불합리한 사회의 희생자는 분명하지만 100% 희생자는 아니다. 그는 죄를 지었으며 죄 값을 당당히 받았다. 억울하다는 주관적인 감정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는 자신을 반성하고 죄 값을 받는 것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