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최초 인권 선언문 (키루스 실린더)
인권은 근대 시민혁명 이후 인류가 추구해 온 최상의 가치였다. 그런데 시민혁명 전 고대에서도 인권이 존재했다는 것이 ‘키루스 실린더’를 통해 밝혀졌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이 시작된 서아시아는 크고 작은 민족의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약육강식의 무대였다.
기원전 7세기 무렵 철제무기를 앞세워 통일국가를 이룬 아시리아는 잔혹한 통치로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이민족을 강제로 이주시켜 노예로 삼고, 지나치게 엄격한 형벌로 다스렸다. 강압적인 지배는 반란의 불씨가 되었고, 아시리아는 결국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했다.
그 후 기원전 6세기경에 이란의 파르스 고원에 키루스2세가 다스리는 페르시아가 등장한다. 키루세 2세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였다. 강대국 리디아와 싸울 때는 낙타를 이용해 그들이 탄 말을 놀라게 해 달아나게 만들었고, 필요하다면 이웃 나라와 손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신바빌로니아가 빈부격차와 종교 분열로 사회갈등이 심해지자 그 틈을 이용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터키, 이스라엘, 시리아, 이란 지역을 차지한 키루스 2세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열었다.
키루스2세의 위대함은 인간적인 통치 방법에 있었다. 성경의 에스라서에 따르면 그는 칙령을 내려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고, 언어와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 관습을 허용하는 관용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200여년 간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1879년 이라크의 바빌론 고대 신전 벽 속에 원통형 고대 문서가 출토돼 키루스2세의 업적이 재조명 되었다. 그것은 진흙 판 겉면에 뾰족한 갈대로 쐐기문자를 찍어서 만든 ‘키루스 실린더’이다. 쐐기문자를 해독했더니 정복민족에게 여러 가지 관용 정책을 베풀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키루스 실린더를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이라고 평가한다. 키루스2세의 관용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인권실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출처; 생글생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