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년 독서 논술 수업으로 진행된 도서<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는 이문열 작가가 쓴 작품입니다. 원래 아이들 책으로 나온 것은 아닌데, 교과서에 일부가 실린 것을 계기로 아이들이 읽기 쉽게 문장 구조나 닡말 등을 다시 손봤다고 합니다.
이 책은 1950~ 60년 전후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 부정부패했던 당대의 모습을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야기를 통해 우의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적 사실이란 대개 관념적이고 피상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에 발생했던 일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필수적이죠. 학생들에게 시대적 배경이 제시된 자료를 읽게 하고,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도록 했습니다.
중학생 수준의 도서로 5학년 독서수업으론 다소 어려운 감이 있었지만, 책 속 인물들도 5~6학년이며, 요즘 모든 면으로 조숙해진 아이들을 감안할 때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작가가 인물을 5~6학년으로 설정한 것은 당시 사회의 모습을 빗대기 위한 고도의 문학 장치란 점을 발견하긴 초등 아이들로서는 좀 어려웠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기의 아이들은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불안하고 모호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도 그랬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강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사춘기 아이들처럼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지요.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면서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 과거 역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이 수업을 끝낼 때쯤 그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청소년 시기를 맞지 않은 아이들은 중학생들과 달리 아직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또래 집단의 서열 문제를 심각하게 경험해 보지 않은 탓에 내용을 비교적 단순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하지만 표면적 스토리는 시대나, 대상에 따라 형태와 방식만 달리할 뿐, 본질은 같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아이들 세계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도서라 해도 현재 우리의 삶과 괴리되거나, 현실과 조우할 수 있는 보편성이 결여된다면, 깊이 공감할 수 없는 작품이 되겠죠.
저는 평소 문학은 시대의 산물이지만, 일단 창작된 후에는 독립된 개체로서 작가의 의도와 상관 없이 변하는 시대나 독자의 상정에 따라 의미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재해석돼진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독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당연히 보는 관점도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이책을 교사인 제 입장에서 본다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함축된 의미를 해석할 테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의 시각은 학교생활과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는 반장이라는 직책을 남용하여 반 아이들을 마음대로 부리고 물건도 함부로 빼앗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힘으로 보복하거나 아이들을 시켜 그를 따돌렸습니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자주 매스컴에 보도되는 집단 따돌림이나 폭행은 기성 세대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저지른 행동이라 보기에 어려울 만큼 잔인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도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동영상이나 유튜브를 즐겨 보는 세대인 만큼 그런 장면들을 목격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에게 엄석대가 학급에서 잘못된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 누구일까? 질문했습니다.
''엄석대라고 생각해요. 반장이라는 권력을 악용해서 자기한테 유리하도록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나쁜 행동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리고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친구들의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쓰도록 강요한 짓은 비겁하고 부끄러운 행동이에요.''
''맞아요! 엄석대는 약한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비겁쟁이에요. 6학년 선생님한테는 꼼짝도 못하면서..''
''저는 한병태의 행동이 좀 아쉽고 안타까웠어요. 처음에는 엄석대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않고 싸웠는데, 결국 다른 친구들처럼 굴복하고, 나중에는 엄석대의 권력 안에서 안주하는 모습에 실망했어요.''
'' 5학년 담임 선생님의 잘못도 큰 것 같아요. 엄석대에게 모든 걸 맡기고 반 학생들에게 무관심했어요. 선생님의 권력을 반장한테 일임하고 자신은 편하겠다는 생각은 무책임한 태도라 생각해요.''
''맞아요. 6학년 담임 선생님과 너무 달라요. 새로 바뀐 선생님은 잘못을 바로 잡으려 노력했어요. 아이들 모두에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반 분위기를 눈치챘고, 엄석대의 나쁜 짓을 밝혀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너무 강하게 엄석대를 벌주어서 결국 학교에서 쫒아내는 결과를 초래했어요. 그래도 아직 아이인데 잘 타일러서 학교는 마치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모두 너무 훌륭한 답변을 해 주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반 아이들의 잘못도 크다고 봐요. 엄석대의 잘못을 알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대항하지 못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행동은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여럿이 힘을 합해 싸웠다면 엄석대가 권력을 계속 지속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독재는 단지 개인의 능력이나 악한 심성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담임 선생님이 엄석대에게 권력을 주고 정작 자신은 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독재는 개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가 큰 몫을 합니다. 또한 부패한 권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당함을 알면서도 그 힘에 의존하거나 아첨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오래 지속됩니다. 작품 속 반 아이들도 엄석대의 힘과 협박이 두려워 저항하거나 대항하려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에게 닥칠 보복이 두려워 부당한 힘에 굴복하는 사람들 때문에 독재자의 행위가 정당화되고 부패한 권력은 유지됩니다.
아이들과 잘못된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의해 보았습니다.
잘못된 권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함부로 남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국민은 독재자의 행위가 옳고 그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비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대부분 국민의 교육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독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재자가 하는 일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거나, 권력자와 결탁한 언론의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시각을 기르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독서나 교육을 통해 지식을 쌓고,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죠. 또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식인이 권력의 힘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와 당당함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부패한 권력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개혁하여 권력도 법 앞에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잘못된 권력을 보고 모르는 척 하거나 방관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누군가 하겠지’라는 무책임한 태도에서 벗어나 나부터 독재의 감시자가 되고 또 그 힘에 맞서 대항할 때 우리 모두 잘못된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지킬 수 있습니다.
독서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말했던 의견이나 답변들을 기억나는 대로 쓰면서 아이들로 인해 저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 것 같아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스승이란 높고 낮은 신분적 차이가 아닌 자신을 깨우쳐 주는 모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수업을 마치면서 항상 어떤 특정한 시기와 이데올로기를 떠나 우리 삶 전반에서 부딪치는 부조리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끊임 없는 자기 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는 다짐으로 귀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