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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06. 2024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가족, 그리고…


암막커튼이 드리워진 방은 아침 열 시에도 어두웠다. 시큼한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져 있었다. 컴퓨터에 연결된 플러그가 콘센트에 그대로 꽂힌 채 열을 발산하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옅게 흐르며 바닥 어딘가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는데, 먹다 남은 음식과 소주병이 작은 쟁반 위에 얹혀 있었다.


망설였다. 커튼을 걷고 동생을 깨워야 할지, 어제 분명 말했음에도 그녀는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늘 그렇듯 건성으로 대답했는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늘 그런 식으로 약속을 번번이 깼다는 점이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그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대응할지가 가장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문제가 돼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안타까움은 슬픔을 넘어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마음을 짓눌렀다.


세 살 터울인 여동생은 두 살 터울인 남동생과 달리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근거리에 있는 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고 싶었지만, 목을 빼고 기다릴 동생을 생각하면서 거의 뛰다시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릴 때부터 장녀인 내가 장사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보살필 의무를 부여받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만을 따르는 여동생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무슨…, 날이지?”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동생의 메마르고 공허한 목소리에 숨이 막혀왔다.


“잠은 좀 잤어?”


“밤새 생각하느라, 생각이 안 나서, 잠이 안 와서 못 잤어.”


횡설수설 어눌한 목소리가 그녀의 상태와 모습을 충분히 짐작케 했다.


“ 내일이 아버지 기일이야. 산소에 가려는데 이번엔 너도 같이 가자.”


“ 그래 이번엔 갈 게, 가야지.”


흐느끼는 동생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다.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시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여기저기 차갑고 미끄러운 생선들이 발밑에서 버둥거렸다. 비린내 진동하는 사방에서 뿌옇고 탁한 연기들이 피어올랐다.


음침한 구석 한편에서 안주거리와 막걸리 들통이 상 위에서 움직였고, 상 밑에서는 쩍쩍 화투장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피곤을 달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몸에는 늘 비릿하고 시큼하고 찌든 연기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 냄새가 너무 싫었다. 어린 마음에 생선을 파는 부모님의 옷에서 손에서 머리에서 나는 비릿하고 쾌쾌한 냄새가 혹시 전염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어쩌다 친구들이 손으로 코를 만지는 시늉만 하더라도 지레 기가 죽어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옷과 동생들 옷을 박박 문질러 빨았다.


처음, 아버지의 놀이가 어머니 말씀을 빌리자면 피곤한 하루를 풀어주는 박카스 같은 거라고 했다. 열심히 노동한 후 주어지는 보상 같은 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는 어머니의 이해와 배려를 강압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다툼이 잦아지고, 집안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아버지와 함께 하던 일들이 전적으로 어머니 몫이 되면서 어머니의 심신도 쇠약해져 갔다.


검은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비닐장갑을 낀 채 연신 생선을 손질하는 어머니의 구부정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놀이가 노름으로 변하는 순간 아버지의 삶은 물론 가족의 삶은 천길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머니 혼자의 힘으로 가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해 날마다 요구하는 돈을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하자 아버지는 어머니 어린 자식들에게도 손찌검을 했다.


아버지가 어느 겨울 차가운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했을 때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어머니가 가슴을 쥐어뜯는 것을.



아버지를 고향 작은 선산에 묻어드린 후 얼마 있지 않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남동생이 우겨서 어머니 산소도 아버지 곁에 마련했다.


어머니는 수목 장을 원하셨지만, 남동생은 평생 불효의 한을 안고 살 수 없다고 했다. 두 분이 사랑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찾을 수 있으려면 함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마치 우릴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망자에게 간청하는 듯했다.


남동생은 영특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생각하고 의젓하게 행동했다. 매사에 성실하고 공부도 잘해 성적도 우수했다.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아들은 갑자기 찾아온 가족의 몰락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선 어떠한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가족 중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모든 역량을 집중해 지원하고 밀어주는 길이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길이라 생각했다.


나와 여동생은 남동생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해서 학비를 마련하고 동생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남동생은 법을 공부하고 고시에도 합격해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졌고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세간에서 말하는 성공한 삶을 이루었다.


남동생의 성공이 우리 자매의 기쁨이란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가족의 기둥이 돼 줄지 알았던 남동생은 자신의 가족을 이뤘고 그 가족의 기둥이 됐다.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 자매의 노고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의 삶에 짐이나 빚이 될 수는 없었다.


여동생은 나하고 달랐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대학을 가지 못했을 때 실망과 낙담으로 괴로워하던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녀는 자신이 품은 꿈과 미래를 말하지 않았다. 언니인 나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만큼 모든 것을 내 뜻에 맡겼다. 하자는 대로 말없이 따르고, 희생을 강요해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독립된 한 사람의 소중한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시간이 흐른 뒤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


눈을 떴다. 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키고 난 후에야 어제 일이 생각났다. 검은 커튼 사이로 하얗고 맑은 물방울이 또르르 굴렀다. 침침한 눈을 몇 번이고 문질렀다. 갈증이 났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컵을 잡았다. 무엇이 엉켜 붙었는지 끈적끈적하다. 커튼을 걷었다. 작은 창가에 앉은 화사한 햇살이 손등을 간지럽힌다. 더없이 고요한 세상 풍경이다.  


밤새도록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웹툰 공모에 도전해 볼 생각은 있었지만, 아직 무엇을 해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큰마음먹고 산 태블릿 펜으로 그림을 그려 컴퓨터에 입력했다.


어린 시절 학교 간 언니를 기다리면서 흙이 있는 마당에서 작은 나뭇가지로 꾹꾹 눌러 여러 모양의 그림을 그렸다. 언니가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 바다와 물고기, 나무 위에 앉은 새, 하늘을 나는 새, 산, 꽃, 그리고 엄마 아빠 얼굴, 어린 마음을 다 받아준 흙 위의 그림이 아이의 꿈이 됐다. 무엇보다 그림은 시간을 잡아먹어서 좋았다.


오랜 시간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셨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수면제를 먹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매번 같은 꿈을 꾼다. 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우릴 지나쳐 간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났다. 언니를 쳐다보았다. 언니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불안한 마음에 언니 손을 더 꼭 잡는다. 저 앞에서 아버지가 나타났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언니가 만들어준 멸치볶음과 김치를 반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뭐 하고 있었어?”

“그냥…,”

“낼 무슨 날인지 알아?”

“……”

“아버지 기일이잖아, 훈이가 데리러 온다니깐 이번엔 너도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 볼게”


 언니에겐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애써 명랑한 척해보았지만, 정작 목소리는 그렇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한 것은 연년생인 오빠의 대학 진학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반평생 하던 생선 장사를 그만두었다.


어머니는 고깃배를 탔던 젊은 시절 아버지를 사랑했다. 박력 있는  남자다움에 끌려 결혼까지 하게 됐다. 버지는 세상물정 모르시골 아가씨의 진한 모습을 좋아했다.


사랑만으로 아버지를 선택한 어머니는 때론 바다 사나이의 과격하고 충동적인 성품까지도 포용하며 가족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과 헌신으로 모진 세상의 풍파를 견뎌오셨다.


언니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힘들고 지쳐도 묵묵히 견뎌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족이란 변하는 것이다. 또 다른 가족이 생기고, 또 떠나가고, 다시 생기고, 그뿐이다.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고 이미 망가진 가족을 되돌릴 수 없다.


난,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고요한 표면 아래 거세게 출렁이는 바다, 한없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얼굴 이면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포효하는 폭력성, 그것이 바다의 본질이다. 바다를 생각하면 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곳은 작은 무역회사였다. 취업 담당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간 곳이었다.   학교를 졸업하지 않지만, 예전과 다르게 모든 게 전산으로 처리 가능했기에 일을 배우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일보다도 나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상사나 선배라는 위선적인 이름으로 나이 어린 여자를 대하는 태도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여자에게 세상에 대한 냉혹하고 부조리한 인상만을 심어주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영혼을 병들게 한다. 아버지가 제일 사랑했던 자식이 나였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마가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위험한 사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영미야 내가 왜 너를 귀여워하는 줄 아냐? 넌 나를 제일 많이 닮았거든, 허허”


아버지의 까칠한 턱이 내 뺨을 스친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면 쉰 냄새가 났다. 나는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같은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었다. 처음 들어갔던 회사의 납품 업자였다. 그는 아버지처럼 정열적이면서도 온화했다. 더 할 수 없이 자상하게 나를 챙겨 주었다. 나를 무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방패가 돼 주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어린 여자를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그의 본색이 드러나고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운명을 저주했다.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그는 폭력을 휘둘렀다.


사람이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한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불면의 날을 술을 마시며,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목 놓아 통곡했다. 아무도 없어서 좋았다. 깊은 어둠이 오히려 나를 지켜 주는 것 같았다. 미래 같은 건 없어도 됐다. 누운 채로 사라지고 싶었다.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바를 하며 이제껏 살아왔다. 편의점이나 PC방 시간제 알바를 할 때 밤 근무를 원했다. 어차피 밤은 언제나 깨어 있으니, 이 일은 나에게 적합했다. 이후 오빠가 가정을 가지면서 우리 자매의 경제적 여건이 나아졌다.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도 많아졌다.


언니는, 나만 보면 슬픈 표정을 짓는다.  예전처럼, 그렇게 바라본다.  그러지 마!  나는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언니 책임이 아니라고, 날 그렇게 불쌍하고 애처롭게 바라보지 말라고,  언니 때문에 내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이란 간사하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면, 부모님을 오빠와 언니를 가족을 원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시 꿈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또 희망을 갖기로 했다. 서서히 고쳐 나가고 있다. 술과 수면제부터 끊을 생각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고구마나 달걀, 뭐 빵과 우유도 괜찮다. 아침을 꼭 먹는다는 게 중요하다. 산책을 하며 햇빛을 쐬고, 스토리 구상도 하고, 일단 몸을 회복해 삶의 활기를 찾는 게 우선이다.



행복은 가까이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여동생과 함께 산소에 가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차마 동생을 깨우지 못했다. 분명 전날 밤을 꼬박 새웠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푹 자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동생 부부와 함께 부모님 산소로 향했다. 깔끔한 정장차림과 달리 운전하는 동생의 널찍한 등이 애처로워 보였다. 어디서나 예의 바르고 단정한 그의 모습을 보면 자랑스러운 만큼 측은하기도 했다.


간혹 갑옷처럼 단단한 그의 외면과 달리 내면의 고뇌가 진액처럼 흘러나와 눈가에 벌겋게 고이는 것을 훔쳐보곤 했다.


남동생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결코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더 강해지려 애썼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맞닥뜨린 가족의 비극 앞에 의무와 책임이라는 무거운 짊은 그의 가치관마저 바꿔놓았다.




“이제 무거운 짐은 벗어도 돼.”


언젠가 남동생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나와 영미가 짐이라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어. 오히려 나 때문에…,”


남동생은 황급히 얼굴을 문질렀지만, 나는 그의 촉촉해진 눈을 보았다.


“형님, 경치 좋은데요. 이런 데서 살고 싶어요.”


올케의 카랑한 목소리가 차 속 무거운 침묵을 깼다.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자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큰 산은 아니지만 길고 길게 이어진 산의 행렬이 한 폭의 그림처럼 지나갔다.


“그래 경치가 참 좋다. 날씨도 좋고.”


“곧 아가씨와 함께 소풍이라도 가요. 형님.”


“당신은 오늘 같은 날…,”


동생은 올케를 나무라듯 말을 흐렸다.


“그래 우리 전부 소풍 한번 가자! 정말 좋은 생각이다.”


태양이 산머리를 돌아 가깝게 다가왔다. 환한 햇살이 차 안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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