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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Jul 20. 2024

여름날  추억


처음 우리가 함께 갔던 여름산은 활기 넘치는 계곡과 아름다운 호수를 소유한 그림이나 시 같았다.


산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고,  숲이 우릴 감싸주었다.  뜨거운 해를 피해 들어온 산속에서 우린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정말  예뻤다.


무작정 산속으로 들어갔던 우리는 푸른 나무처럼 싱그러웠고 여름처럼 뜨거웠다.


여름 계곡 서늘했다.  발을 담그고 쉬던 우리는 다시 움직였다. 울창한 나무 그늘 사이로 간간이 비추던 해 납빛구름에 가려 희미해졌다.


산등성이를 따라 흐르던 물줄기는 서늘한 나무 그늘 옆을 지나 빽빽이 우거진 숲으로 사라졌다. 길은 점차 오르막으로 바뀌었고 바위가 험해졌으며 굽은 산길들이 내려다 보였다.


얼마쯤 가니 비탈길이 나왔다. 비탈길을 내려오자 길다운 길은 끝나고 풀이 무성한 숲이 나왔다. 덤불을 헤치자 숨겨졌던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던 물줄기가 다시 나타났다. 작은 바위길을 따라 흐르던 물은 잠시 쉬어가듯 잔잔한 호수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수 수면은 잔물결 하나 없이 평온해 보였지만 바닥은 알 수 없었다. 입 벌린 암흑의 동굴처럼  그 깊이와 어둠과  잴 수 없는 것임을 으로 느꼈다.


우린 호수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너는 나를 그윽이 바라보며 호수 생각을 가늠할 수 없는 검은 눈동자 같다고 했고 나는 네 말에  가슴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바람 부는 날,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산과 계곡을 헤매던 눈부셨던 여름날을 회상했다.


잔잔하고 기괴했던, 아름답지만 두려웠던 그날의 호수를 떠올리면 서늘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파고들었다.


검은 구름이 온 산을 뒤덮고 요란하게 대지를 두드리는 여름 소나기가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휘몰아치는 빗줄기를 품으며 조용히 춤추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물 폭탄에 드러누운 수풀들처럼 우리도 동그랗게 몸을 웅크리고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소나기에 휩싸인 격정의 숲과 달리 호수는 너무 평온해 보였다. 순간 무엇에 홀린 것처럼 나는  호수로 다가갔다.


호수의 심연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었다. 너는 나를 붙잡았고, 나는 너에게 안겨 흐르는 비처럼 하염없이 울었다.


비가 그치자 모든 것들이 빛났고, 나무마다 수풀마다  맺힌 물방울들이 서로를 비었다. 호수의 물은 순식간에 불어났지만, 어느 틈으로 쉼 없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모든 세상이 다시 고요해졌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더위에 지친 여름,  희미해진 기억 너머로 아름답지만 서늘했던 젊은 날, 어느 여름, 산속을 헤맨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새겨진  호수 하나를 꺼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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