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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경 Apr 28. 2024

어떤 풍경

                             


내부 순환 도로 아래는 꽤 널찍다.  그곳 한 편에 중간 크기의 평상이 두  붙어 있고 하나는 좀 떨어진 곳에 있다. 평상 위에는 어르신들이 자주 모여 즐기는 바둑과 장기에 필요한 것들이 놓여 있다.


원목으로 된 바둑판 옆에는 자질구레한 짐들이 사용자의 손길을 기다리며 한 무더기로 붙어 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로 밑에서 벗어나지 않은 곳에 남녀 화장실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아직 컴컴한 새벽길에 화장실에 딸린 파란 전등이 깜빡 졸다가 다시 깨어나곤 했다. 조금 아래로 눈을 돌리면 역시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하는 게이트볼장이 양쪽으로 두 군데나 있어 노인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삶의 의욕을 북돋줄 것 같았다.


도로 밑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폭이 좁고 길쭉한 공간에 새로 정비한 놀이터가 있다. 산뜻한 색깔의 놀이기구가 늘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놀이터 가장자리에 나무벤치가 삼십 센티쯤 사이를 두고 두 개씩 놓여 있다.  중앙 놀이기구에서 어른 보폭으로 서너 발자국쯤 가면 플라스틱 투명부스가 있는데 그 안에 많지 않은 책이 선반 위에 진열돼 있다.


누구나 읽고 싶으면 자유롭게 뽑아 읽고 다시 넣어두게 돼 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동안 보호자가 책을 볼 수 있도록, 또는 이곳을 방문하는 누군가를 위해 마련한 따스한 배려가 느껴다.


도로 밑을 지나며 이곳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되는데, 그것은 일정 시간이 되면 변함없이 벌어지는 장면들 때문이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른 아침에는 생선을 파는 트럭을 만난다. 생선주인인 오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바닥에 커다란 비닐 천을 깔고 여러 가지 생선들을 진열다.


철을 가리지 않고 이곳에서 장사한 지가 꽤 오래됐다. 일주일에 두 번 요일을 정해서 왔다. 얼음이 녹아 물에 잠긴 생선에서 풍기는 비린 냄새는 어느 여름 바닷가를 회상하게 했다.


오후가 되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이 모여들었다. 날씨가 몹시 춥거나 눈비가 많이 오는 날을 제외하고 늘 같은 모습이다.


그곳을 지날 때면 대화나 훈수 는  소리로 시끌벅적했고,   게이트볼 치는 소리도 분분다. 


몸이 불편한 어떤 할머니는 대충 같은 시간에 지팡이에 의지해 재활 운동을 열심히 다. 하루도 빠짐없이 움직이는 할머니를 보면서 생명의 강인함을 느끼곤 했다.


출근이나 퇴근을 하던 시절은 지났다. 도로 밑으로 지나갈 일이 많아졌다는 것은 이제 별로 바쁜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출퇴근에 맞춰 버스를 갈아타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다.


여러 길을 두고 이곳으로 가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역으로 가려면 큰길로 가는 것보다 도로 밑으로 가는 것이 지름길이기도 하고 또 매일 보는 풍경이 정겹고 궁금하기도 했다.


처음 그와 마주쳤을 때 움찔했다. 단번에 그 남자가 노숙자라는 것을 알았다.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는 한 움큼 묶여 있었고, 나머지 머리카락은 삐져나온 채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다.


얼굴은 숯검정을 바른 듯 새까맸다. 끈이 너덜너덜한 배을 메고 있었고, 몇 개의 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쓰레기 같은 것들이 투명한 봉지 속에 너저분하게 담겨 있었다. 옷은 낡고 지저분했고 철에 맞지 않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 후 여러 번 그를 보았다. 늘 도로 밑을 서성거리며 눈은 먼 데를 보고 있었다. 바라보는 곳이 하늘같기도 허공 같기도 했지만 아예 아무 곳도 바라보지 않는 것도 같았다.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참 이상했다. 그 남자의 행색은 초라하고 더러웠는데, 작고 갸름한 그의 얼굴은 모든 걸 초월한 듯 온화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검었지만 그의 눈만은 맑게 느껴졌다.


겉으로 보이는 삶은 위태롭고 불안해 보였지만 그의 표정과 행동은 오히려 천진해 보였다.  그 남자의 삶은 어떤 것일까,  무슨 사연이 있기에 집도 없이 떠돌게 되었을까.


그의 삶을 멋대로 상상하거나 동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거나 친절을 베풀 용기도 없다. 다만 왜 변하려 애쓰지 않는지를 알고 싶었다.


의 삶이 일반인이 바라보는 편견처럼 무기력이나 게으름 고착돼 지금에 이른 것인지, 그동안 재기할 환경이나 조건이 주어지지 않았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다.


단지 그를 보면서 불행이나 비참함 같은 단어보다 다른 생각이 스쳤다.  복과 불행은 상대적이라 타인의 시선에 비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먼 곳을 보는 그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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