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쩌다 보니

by 아무

어쩌다 보니

어쩌다 베란다 문을 살짝 열어두었다. 어쩌다 보일러도 켜지 않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온몸을 부들부들 추위에 떨면서 잠에서 깼다. ‘어쩌다’가 겹치니 다른 뭔가를 놓치게 된다. 평소보다 푹 잔 것 같은데 으슬으슬하다. 덕분에 또 감기가 올 것 같아 뜨끈한 아침을 먹고 평소보다 두꺼운 옷을 껴입었다.

잠깐 방심하면 뭔가를 놓치는 행위가 자주 반복된다. 그게 나를 향한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다른 사람과 연관된 거라면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내 카드 잃어버리면 재발급받으면 되는데 남의 카드의 행방을 잠시 기억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후에 무사히 돌려주었던 걸 확인했지만 그걸 어디에 놔두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너무 당황했다. 이렇게 허술하게 살아온 적이 없었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매사에 완벽함을 유지해왔는데 요즘은 덜렁이 저리가라다. 몇 년 전 아이크림을 영양 크림 처럼 얼굴에 치덕치덕 바르던 때를 기억한다. 그땐 한 번 웃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게 일상이다.

너무 긴장하고 살아왔나 보다. 누군가 날 괴롭히거나 못살게 군 건 아니었는데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다가 나를 잃어가고 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어떤 상태를 즐기는지보다 그저 살아남으려 애썼다.

하나 둘 씩 놓칠 때마다 기운이 빠진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내 모습이 웃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