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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Jun 10. 2019

[읽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2018)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일기

[완독 2019-35 / 에세이]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난다. (2018)

영남 사람이 경상도 말을 하고, 호남 사람이 전라도 말을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모국어란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이 태를 묻고 성장한 땅의 방언이기도 하다. 이 방언은 세상의 모든 말을 익히고 이해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좋은 문체를 지닌 지방 출신 작가들의 글을 살펴보면 그 문체가 그의 방언과 표준어의 교섭 속에서 성립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도 있다. 방언은 자주 우리의 언어 감각을 현실의 가장 깊은 바닥까지 끌고 내려간다. (45)

진리는 늘 새로운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한 언어의 관점에서 다른 언어는 제가 표현하지 못하는 숨은 진실을 쌓아놓은 저장고와 같다. 그래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언어를 지키고 가꾼다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의무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의무가 된다. 우리가 추석에 고향에 가는 것은 우리의 언어가 닿지 못한 진실을 체험하기 위한 여행이기도 하다. 귀신은 어떤 언어에도 감응하지 않는다. 숨은 진실은 거기 있을 뿐이다. (149)

남자의 서사는 못난 살인자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웅의 서사다. 먼저 들어야 할 것은 희생자의 서사다. 역사의 발전은 늘 희생자의 서사로부터 시작한다. (219)

한 지식 체계의 변두리에서는 지식이 낡은 경험을 식민화하지만, 오히려 중심부에서는 지식이 늘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본다. 제가 무지 앞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무지에 둘러싸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다. (229)

작년 이맘때 김형석 할배의 ‘백 년을 살아보니’를 의미 있게 읽었다.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께 묻고 들을 수 없으니 책을 통해 할배의 연륜이나 조언 같은 걸 듣고 싶어 이 책을 골랐다. 프랑스 문학이라는 개인적으로 동경하는 학문을 연구하는 황현산 님의 책,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불문학을 전공한 노학자가 고뇌해온 것들을 우리에게 전하는 책이다. 살아오며, 연구하며 느낀 것,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 등 저자의 깊고 바른 시선이 느껴졌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 뒤로 갈수록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문학 문외한인 나에게 다른 세상의 글귀로 느껴져 직접 와 닿지 않았고 글자만 훑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문학적 깊이와 소양을 쌓은 후에 읽으면 힘껏 몰입할 수 있으려나. 좀 더 갈고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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