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하루의 시작을 점친다. 커피는 내게 정신을 깨우는 용도 말고도 ‘오늘의 운세’나 ‘바이오리듬’처럼 하루를 미리 확인하는 용도가 되기도 한다. 커피 맛이 괜찮다면 오늘도 괜찮을 것이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은 좋은 하루를 시작할 가능성과 비슷한 말이다. 원두 상태가 좋지 않다면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커피 맛이 좋을 수 없기에 괜찮은 원두 찾기는 내게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다.
최근 몇 달 동안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보통인 원두를 먹고 있었다. 덕분에 커피에 대한 만족도도 별로, 커피를 즐기는 시간도 별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지 않기 위해 남은 반찬을 내 입으로 넣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걸 다 먹고 나면 기필코 괜찮은 원두를 사들이리라 다짐해왔다. 괜찮은 커피가게를 찾았지만, 원두를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원두에 대해서만큼은 까다로운 편이다. 그보다 더 괜찮은 원두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커피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진심이다.
며칠 전 드디어 느낌이 오는 원두를 발견했다. sns에서 알게 된 곳인데, 사진만으로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번화가가 아닌 동네에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교통편이 불편한 데다가 오픈 시간도 독특해서 삼고초려를 더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겔레나 아바야 허니 g1’ 200g을 사 왔다. 못생긴 것 없이 골고루 동그랗고 예쁜 색의 원두와 패키지에서도 포스가 전해졌다. 첫 만남이 꽤 괜찮다. 오랜만에 부풀어 오르는 커피 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거지.’
부풀어 오르는 커피 빵을 보면서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커피 맛은 당연히 좋았고, 함께 사 온 더치커피도 맛이 좋았다. 더치커피에서도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몇 주 동안 아무 원두나 사지 않고 버텨온 보람을 느꼈다. 당분간 g1과 함께하는 시간이 꽤 즐거울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나는 직감을 즐기는 사람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순서와 절차를 따르는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 직감 같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짜릿함을 느낀다. 맛 좋은 커피는 나의 에너지이다. 맛 좋은 원두를 직감적으로 찾아낸 이 과정이 뿌듯하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지 커피 한 잔에 불과한 찰나의 시간이지만, 내겐 하루의 기쁨이다. 이런 소소한 설렘이 있어 나의 하루는 행복하다.
남이 해준 음식은 전부 맛있지만, 커피는 다르다. 내가 내린 커피가 가장 맛이 좋다. 덕분에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