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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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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Mar 18. 2021

오늘의 커피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하루의 시작을 점친다. 커피는 내게 정신을 깨우는 용도 말고도 ‘오늘의 운세’나 ‘바이오리듬’처럼 하루를 미리 확인하는 용도가 되기도 한다. 커피 맛이 괜찮다면 오늘도 괜찮을 것이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은 좋은 하루를 시작할 가능성과 비슷한 말이다. 원두 상태가 좋지 않다면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커피 맛이 좋을 수 없기에 괜찮은 원두 찾기는 내게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다.


최근 몇 달 동안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보통인 원두를 먹고 있었다. 덕분에 커피에 대한 만족도도 별로, 커피를 즐기는 시간도 별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지 않기 위해 남은 반찬을 내 입으로 넣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걸 다 먹고 나면 기필코 괜찮은 원두를 사들이리라 다짐해왔다. 괜찮은 커피가게를 찾았지만, 원두를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원두에 대해서만큼은 까다로운 편이다. 그보다 더 괜찮은 원두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커피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진심이다.


며칠 전 드디어 느낌이 오는 원두를 발견했다. sns에서 알게 된 곳인데, 사진만으로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번화가가 아닌 동네에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교통편이 불편한 데다가 오픈 시간도 독특해서 삼고초려를 더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겔레나 아바야 허니 g1’ 200g을 사 왔다. 못생긴 것 없이 골고루 동그랗고 예쁜 색의 원두와 패키지에서도 포스가 전해졌다. 첫 만남이 꽤 괜찮다. 오랜만에 부풀어 오르는 커피 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거지.’

부풀어 오르는 커피 빵을 보면서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알았다. 커피 맛은 당연히 좋았고, 함께   더치커피도 맛이 좋았다. 더치커피에서도 풍미를 느낄  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동안 아무 원두나 사지 않고 버텨온 보람을 느꼈다. 당분간 g1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울 거라는 믿음 생겼다.



나는 직감을 즐기는 사람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순서와 절차를 따르는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 직감 같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짜릿함을 느낀다. 맛 좋은 커피는 나의 에너지이다. 맛 좋은 원두를 직감적으로 찾아낸 이 과정이 뿌듯하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단지 커피 한 잔에 불과한 찰나의 시간이지만, 내겐 하루의 기쁨이다. 이런 소소한 설렘이 있어 나의 하루는 행복하다.


남이 해준 음식은 전부 맛있지만, 커피는 다르다. 내가 내린 커피가 가장 맛이 좋다. 덕분에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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