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가·윗우가·제전항
김려원 시인의 울산등대 마주보기12

워낭소리 실은 파도 밀려오는 바다의 성소

by 꽃신꽃신내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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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실은 파도 밀려오는 바다의 성소


김려원

2022.06.09 19:59


[U&U+ 김려원 시인의 울산 등대 마주보기] 12. 우가·윗우가·제전항등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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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미소를 우시장에 내다 판 사실을 숨겨, 애타게 잃어 버린 소를 기다렸던 소년의 전설이 남은 북구 당사동 윗우가항의 모습. 김동균기자 justgo999@



"그걸로 뭐 하시는 거예요?" 우가항방파제등대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 중년의 남녀가 방파제 가장자리에서 긴 쇠막대기로 물풀 속을 가늠하고 있다. 나도 눈길을 빠뜨려 본다. "군소를 잡고 있심더." "군소를, 막대기로 잡아요?" "운이 좋으면 해삼이나 뿔소라까지 건집니대이."


배 한 척 없는 한낮의 항구는 처음이라 어리둥절하던 중이었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밑바닥, 물과 풀뿐인데 군소가 있다? 해삼, 뿔소라도 있다고? 손톱만 한 고동이나 잡아본 나로선 신기할 따름. 두 중년에게 오늘의 내항은 신통찮은 모양이다. 바다와 산을 이어 낸 강동누리길의 우가마을 산책로를 따라가니 돌무더기 해변이 나온다. 언젠가 문어 38마리를 한꺼번에 잡은 곳이란다. 물옷을 챙겨입은 중년 남자가 수평선 쪽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그러곤 만능집게와 바구니를 챙겨 들고 바닷물에 들어간다. 허리께의 물속을 살피던 여자가 뭔가를 잡아챈다. 군소일까? 해삼 아니면, 뿔소라? 금세 서너 마리를 담는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미소가 갯내에 묻어온다. 크게 손을 흔들곤 우가항으로 다시 나왔다. 묵직해진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당연히 배가 드나들던 항구였어요. 한적한 마을에다가 물이 깨끗해서 2015년에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되었지요. 5백 미터쯤 위쪽에 있는 윗우가항으로 배를 다 옮긴 겁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스노클링, 투명카누,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를 체험하는 사람들로 북덕거렸습니더." 마을 주민인 어촌체험마을 책임자는, 어촌뉴딜사업이 내년에 착공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넓어진 체험장과 현대화 시설로 우가마을이 신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란다. 마을공동어장의 불법 어획 감시카메라도 네 곳에 설치한다고. 등대가 뙤약볕 아래에서 바닷바람을 붉게 맞이한다. 밤 바닷길 13㎞를 밝히는 우가항방파제등대는 8.6m 높이의 강철 구조물이다. 항구로 드는 배 맞이는 오래전에 끝났으나 관광객 맞이로 다시 바빠질 등대. 한 꼬집의 무른 살도 잡히지 않을, 날씬한 몸체가 단단하다. 배들이 옮겨간 윗우가항과 등대가 아슴아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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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산 들입 머리에 자리한 우가항의 곰솔나무 당산목이 250여년이 넘도록 푸른 바다를 지키고 있다.


귀여운 항구다. 어쩜 이렇게도 조그마한가. 달랑 어선 두 척이 가장자리에 붙들려 있고, 20여 척의 어선은 육지로 올라왔다. 녹슬어가는 노란 크레인이 수고로웠을 법하다. 이곳의 어선들은 돌문어잡이를 주로 한다. 5월 16일부터 6월 30일까지는 문어의 번식과 보호를 위한 금어기라 배들이 육지에 오른 것. 하양등대에 기대어 수평선과 항구를 번갈아 본다. 지구가 둥글어 수평선도 둥글고, 머나먼 고래 등도 둥글고 우가항도 윗우가항도 둥글다. 지중해 북부의 이탈리아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긴 아드리아해를 보며, 자궁을 빠져나오는 아기의 탄생 길을 떠올린 적이 있다. 이곳은 쌍둥이를 품어 키우는 엄마의 자궁 같다. 어찌 이곳뿐이랴. 지구상의 수많은 항구가 배를 키워 내보내는 바다의 성소일지니. 항구의 문 앞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니 소의 워낭소리를 파도가 실어온다. 어미 소와 소년 망이의 전설을 품고.


망이가 동네 처자들과 노는 동안 아버지가 어미 소를 우시장에 내다 팔았다. 워낭만 부뚜막에 남았다. 아버지는 어미 소가 바다에 풀을 뜯으러 갔다 했다. 햇볕 좋은 날의 바다는 푸른 풀밭과 같아서 망이는 송아지와 언덕에 앉아 날마다 어미 소를 기다렸다. 어느 날 바닷물 속에서 걸어 나오는 어미 소를 보았다. 망이는 워낭을 달아주러 바다에 들어가고….


망이도 어미 소도 보이지 않는 우가포의 워낭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하양등대를 돈다. 2011년 6월에 불을 밝힌 윗우가항방파제등대는, 한 달 뒤에 붉은 불을 켠 우가항등대와 모양과 높이가 같다. 하양등대의 빛이 2㎞더 멀리 간다.
망이와 송아지가 어미 소를 기다렸을 언덕으로 가는 길. 강동사랑길 포토 전망대에서 워낭 항구를 내려다본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까지 딸랑딸랑 드맑은 소리가 뻗친다. 온통 푸른 풀밭인 유월의 바다를 되새김질하는 어미 소의 음머어~ 소리도 들린다. 언덕도 풀밭이다.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중년들의 오후가 땀방울을 말린다. 반쯤 누운 자세로 안전울타리 너머의 소나무에 얼굴을 맞댄 소나무가 두 눈을 사로잡는다. 바다에 떨어질 듯 위태한 소나무 사이가 워낭처럼 둥글다. 두 나무가 하나 된 이일송이다. 부부나 연인들의 금실이 좋아지는 곳이라 '금실정'이라고도 한다. 어미 소를 찾으러 간 워낭이, 항구만으로는 아쉬워 소나무 사이에 둥근 바다를 걸어둔 걸까. 삐걱거리는 그네를 흔들며 바다 시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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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금실이 좋아지는 곳인 우가항 '금실정'의 바닷가 낭떠러지에는 두 소나무가 서로를 향해 등이 구부러져 있다.


우가포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네/ 외로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물을 던진다네/ 파도를 타다보면 고혹적인 바다/ 어부들은 밤마다 바다를 안아/ 우가포는 천천히/ 수태受胎한다네// 솜털처럼 유순한 별빛이 내려앉고/ 새 소리 한 자루씩 해무海霧 위로 풀리는/ 우가포엔 날마다 바다가 있고/ 우가포 사람들의 어망에도/ 하나씩의 바다가 있어/ 아침마다 그곳에는 싱싱한 아이들이 태어난다네//(하략.) ― 권영해의 시 <우가포 사람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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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닿을 듯 바닷 속 물길이 맑게 비치는 제전항의 모습.


아침마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우가포에서 또 다른 탄생지로 향한다. 바다장어 펄떡이는 제전항이 가깝다. 우가항이 귀여움이라면 제전항은 천연스럽다. 드넓은 항과 닥나무밭 마을은 소문난 장어맛으로 30년 전부터 미식가들을 불러들였다. 암반이 넓게 산재해 소고동, 잔창암, 단치암, 옥수암, 중도암, 배돌암, 대청방 등의 미역바위는 해녀들이 봄꽃 대신 미역꽃으로 화관을 두른 곳. 봄날의 미역채취와 건조 시기엔 장모님 장례식에도 못 갈 만큼 바쁜 제전 사람들이다. 방파제 앞 도로변에 마을기업 1호 간판을 건 '사랑길 제전장어'가 있다. "직접 잡은 장어를 손질해 구워주는 곳이에요. 어르신들의 용돈벌이 취지로 문을 열었지요. 15년이 돼가네요. 건너편에 2호점도 있고요. 이제는 어르신들이 연로해서 장어잡이를 못 나가요. 장어잡이 배도 없고요." 포장마차가 늘어선 제전항의 젊은 90년대가 그녀의 눈빛에 어른거린다. 연탄불에 익어가는 장어구이가 항구를 고소하게 뒤덮으면 그녀의 앞치마 주머니도 불룩해졌겠지. 장어마을의 장어도 지금은 경북 일대에서 들어오고 있단다. 그 많던 제전 장어는 어디로 갔나. 건물 2층의 제전마을박물관에 올라가 본다. 2016년 한 해의 마을 생활사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미역 채취 일정, 어민들의 생필품인 온갖 어구들, 바다와 함께 나이든 마을 역사, 사진과 상패들까지. 제전 사람들에겐 특별한 사랑방이겠다. 장어배 대신 낚싯배가 차지한 항구를 돌아보며 등대로 간다. 등대길 안전울타리에서 부조 그림 장어들이 빨간 하트 속을 헤엄치며 방문객을 맞는다. 8m 높이의 제전항방파제등대도 우가항과 같은 붉은 강철로 된 등대. 2015년 7월에 붉은 첫 불을 켰다.

등댓불이 없던 시절에도 고깃배들은 생계를 위해 항구를 드나들었다. 어부들은 장어에 눈멀고, 미식가들은 장어구이에 눈멀어 제전항을 오갔다. 그런데 장어마저도 눈이 멀어 제전항을 찾아들었다.


용왕의 딸에게 반한 제전항의 장어가 있었다. 공주와의 혼인을 애원하자 용왕은 장어의 눈을 빼는 형벌을 내렸다. 장어가 포기하지 않자 용왕은, 굶은 상태로 태평양을 다녀오면 혼인을 허락한다고 했다. 장어는 지금도 더듬더듬 태평양을 헤엄치는 중이다. 수많은 장어가 눈먼 장어를 위로하러 제전항으로 제전항으로 모여들었으니…. 그러한 장어를 잡는 어부를 장창호의 <화봉이와 옹녀공주> 마당놀이 음악극으로 보았다. 역병 때문에 출연진이 마스크를 끼고 연기한, 너나없이 답답하던 때였다. 동해 용궁의 셋째딸로 사랑을 찾아 육지에 오른 32세의 옹녀공주, 제전마을 어부이며 공주 납치범인 용식, 공주의 호위무사이면서 스토커인 장어, 취직 시험에 아흔아홉 번 낙방하고 붕장어낚시나 하는 화봉. 그들이 만들어가는 강동 바닷가의 사랑 이야기. 제전마을 용식은 공주와 혼인하려 노래한다.

 "…나는 장어 잡아 사는 어부/ 못 배우고 말 또한 거칠지만/ 알고 보면 알뜰살뜰한 남자/ 얼굴엔 기름이 번들거려도/ 오늘도 장어 팔아 적금 드는/ 제전마을 알부자 노총각 대표/ 이리 와요 어여쁜 사람아/ 내가 너를 행복하게 해주마."

제전용궁 공주와 혼인해야 하는 눈먼 장어는 언제쯤 돌아올까. 떠버리 용식은 지금, 옹녀보다 이쁜 처자의 마스크 벗은 입에 꼬솜한 제전장어 한 입 넣어주고 있으려나. 우가항에도 윗우가항에도, 제전항에도 태아의 꼼지락 같은 물고기들이 파도를 물고 떼를 지어 나들이한다. 그들이 자라 머나먼 고래의 등에 닿을 때까지 오늘도 항구는 푸른 바다를 둥글게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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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원 시인. 2017년 진주가을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이메일: climbk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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