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티스 Apr 26. 2024

H와 나

우리가 연락이 어려운 이유

2024.4.26 금


"선생님, 제가 우리가 왜 연락이 어려운지 알았어요!"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연락이었다. 2020년에 대학원에 같이 입학한 우리는 담당교수님은 달랐지만 친하게 지냈다. 뭔가 모를 끌림이 있었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적정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었다. 자주 연락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는다. 그리고 '선생님이 바쁘시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카톡도 하려다 그만둔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때는 연결감이 없었다. 더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누군가와 친해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양육환경에서 기인한 부분도 있고, 기질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선생님과 나의 MBTI 성격유형은 다르다. 에니어그램 유형도 다르다. 


뭔가 끌림이 있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말이다. 하나 찾은 게, 친밀함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대학원 동기 중에 나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아는 친구다(나이는 다르다). 그 선생님도 그런다. "선생님한테는 이상하게, 다 말하게 돼요." 친밀함이 어려운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떻게 '친밀'하게 되었을까?


"안전함이 느껴져요."

우리 둘이 찾은 대답이다. 서로가 천천히 다가오고, 조심하기 때문에 갑자기 누군가 나와 확 친해지려 한다는 불안감을 자극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이 두렵다. 


'왜? 나를?'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육과정에서 각자 다른 이유로 '유기 불안'을 경험했다. 굳이 따지자면, 친정 엄마가 약간 냉담한 유형에 가까우시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와 마음 편하게 수다를 떨거나, 속 이야기를 꺼내놓는 걸 어려워한다.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짐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버지와 친하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다.


우리는 항상 두려워했던 것이다. '내가 과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둘 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아직도 마음속 한편에 있었던 숨겨진 질문이었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는 가끔씩 통화하면서도 이렇게 본론으로 훅 들어간다.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를 안전하게 느낀다. 내가 어떠한 모양이어도 상대가 나를 비난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관계이다. 이 부분도 이야기를 하면서 확인했다. 그러니 갑자기 이렇게 훅 본론으로 들어간다.


"선생님, 대상관계 이론에서 함입, 내사, 동일시'와 연관 있을 거 같아요. 주말에 김창대교수님 수업 듣다가 갑자기 확 귀에 들어오는 단어들이었어!'

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융의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래서 '40대 여성이 여성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떠오르는 이야기를 넘나들어도, 상대가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공감하고 심지어 함께 공부했으니 이해한다는 것 자체를 안전하다 느낀다. 그래서 가끔 생각나면 이렇게 마음 편하게 연락을 한다. 그리고 반갑다.


각자 자리에서 온전히 자기 일(공부, 상담, 육아 등등)하다가 연결되고 싶은 순간에 또 연락을 한다.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주 연락을 못할까?'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건 유기 불안이었다. 관계에서 거부당하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내가 친밀하게 느끼는 대상에게 다가갔는데 거리감을 느낄까 봐 두려워서 아예 가까이 가지도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혼자 있는 건 외롭지만, 가까이 가는 건 두렵기 때문이다. 큰 두려움을 넘어서기 어려워서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밑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찾는 중이다.


왜 다가가지 못하는 걸까.

왜 두려운 걸까.


이번에 찾은 건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면 지배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이 아예 사라질 거 같은 두려움.


또 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찾을까.


각자 치열하게 자기 관찰을 하면서 찾은 보물들을 나눈다. 혼자 찾을 때보다 단단하고 풍성하다.


아마도 이 관계는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다음 동기와 통화가 기대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Pixabay로부터 입수된 Dariusz Sankowski님의 이미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소답지 않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