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13 화
“선생님, 잠시 시간 되요?”
1시 상담을 마치고, 내담자의 말들을 떠올리며 보고서를 쓰고 있던 참이었다. 동료 선생님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0.1초 동안 망설였다. ‘분명 길어질 텐데.’ 아주 짧은 고민이었다. 이 보고서를 마저 쓸 것인가, 아니면 이 선생님과 연결됨을 선택할 것인가.
‘그래, 사람이다.’
보고서는 나중에 다시 쓰면 되지만, 사람과의 연결은 그 순간을 놓치면 되돌릴 수 없다.
“네, 선생님.”
“쌤들은 T잖아요. 한 번 들어봐요. 내담자가 이야기하는데, 감정 폴더가 따로따로 나뉘어져 있대요. 그게 가능한 일이예요??”
“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봐야겠어요.”
(내담자의 이야기는 비밀보장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동료 수퍼비전으로, 같은 수련기관 내에서 내담자의 동의를 받은 후 수퍼바이저 및 동료와 함께 사례를 나누기도 한다. 상담자의 성향에 따라서 동료 수퍼비전을 선호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사례회의 때 말씀드린 그 친구인데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는 하는데, 관련된 얘기는 전혀 안 해요. 뭔가 중요한 부분 같거든요. 그리고 일은 일이고, 즐거움은 따로라네요. 보통은 그런 게 좀 겹치지 않아요?”
옆의 선생님이 한마디 보탰다.
“나는 일하면서 즐겁기도 하던데요.”
나는 조금 다른 입장이었다.
“저는 일은 일이고, 즐거움은 또 다른 차원의 것 같아요. 일에서 얻는 보람과 놀이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결이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이런 부분이 제가 이 내담자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멈칫하는 영역 같아요. 쌤은 오히려 그 내담자와 좀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렇게 대화는 20분 넘게 이어졌다.
나는 이 시간을 ‘놀이’라고 느꼈다. 동료 선생님들과 연결감을 느낄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쁘다. 대화를 시작할 땐 무엇을 나누게 될지 모른다. 다만 그 선생님과 시간을 함께하기로 ‘선택’할 뿐이다.
나에게 있어 일, 놀이, 사랑, 연대는 삶의 중요한 네 기둥이다. ‘일’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과 ‘연대감’ 역시 소중하다. 그래서 대화를 마치며 전했다.
“선생님들과 대화, 정말 즐거웠어요.”
우리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몰랐던 걸 알게 되고, 아는 걸 나누며 서로의 세계가 깊어졌다. 이 시간이 즐겁다. 그 즐거움은 내가 사랑하는 삶의 ‘결’과 닮아 있다. 상담동료들과 연대감도 그 즐거움 영역 안에서 더욱 깊어진다.
한 때 나는 내가 대나무처럼 느껴졌다. 겉은 단단한데, 속은 텅 비어 강한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부러질거 같은. 30대 중반 이후부터 ‘갈대’ 같은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흔들리지만 쉽게 쓰러지지 않는, 넘어지더라도 뿌리째 뽑히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그런 존재 말이다.
어느 날 강력한 태풍이 지나간 후, 강가를 산책했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던 벚나무는 바람에 쓰러져 버렸다. 하지만 갈대는 슬며시 누워 있었고, 며칠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섰다.
다른 사람의 눈에 번듯한 꽃을 피워내지 않아도 괜찮다.
화려한 열매를 맺지 않아도 괜찮다.
강렬한 여름 햇살 아래서도,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면서 제 자리를 지키는 삶.
그런 갈대처럼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서 빛나지 않아도,
여럿이 어우러져
가을에 황금빛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 갈대처럼 말이다.
이 마음들이 나를 지탱해준다.
나를’ 나’로서 살아가게 만드는 생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