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8 목
네가 아니었다면,
세상이 이렇게 여러가지 맛이 난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나는 참 무심한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잘 안다. 꽃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한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혼자 고요하게 머무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상담공부를 시작했다. 미지의 영역을 배워가며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듯하다. 우리집 첫째 딸이 그렇다. 누군가는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울컥한다는데, 나는 큰딸이 그런 존재다. 과거 기억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가면서 어김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에게 큰 딸은 세상의 전부였고, 지금도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눈물이 흐르고 있다..또르르)
딸아이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부모님에게도 연인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의 충만감을 그녀로부터 받았다. 내 삶은 큰 딸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좋은 세월만 있었다면, 이토록 깊은 감정을 느끼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큰딸과 함께한 세월은
‘인생의 쓴맛, 단맛, 신맛, 매운맛…..‘
정말 다양했다. 어릴 때는 내가 보호자였지만, 이제는 그녀가 더 듬직해 보이는 순간도 많다.
오늘 아침, 매일 듣는 아침 클래식 방송에 딸이 사연을 남겼다.
오늘도 스타티스 딸!!로써 한번 와보았습니다.
아침에는 방송 듣고계시던데 아직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엄마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유튜브 클래식 방송 댓글창에 남길 이 글을, 진행자인 나웅준님께서 읽어주셨다. 아이들을 모두 보내고, 아침 설거지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또 서프라이즈를 해줄지 몰랐다.
꽃다발 주문해뒀는데 다음주쯤 준비가 된다하네요ㅠㅠ 엄마 이번달은 꽃 배달 시키지마여!!!!
매달 나를 위한 선물로 1만 원 내외의 꽃다발을 주문하는데, 그 꽃을 대신 주문해두었다는 거였다. 감동이었다. 울컥했다.
우리 모녀 관계가 항상 이렇게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중학교 한창 사춘기 때 싸우면 살벌하게 싸우기도 했다. 그 긴 터널을 지나고 나니, 서로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꺼내서 보일 여유가 생겼다.
여전히 우리는 투닥거린다. 서로의 PMS기간에는 호르몬의 영향인지 모르고 상대 탓을 하며 말싸움을 하거나 예민하게 받아쳐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금세 풀린다.
라디오에서 ‘사랑의 바보’가 흘러나왔다. 청취자 중 한 분이 사연을 보냈다. “이 가사를 연인 간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 관계로 바꿔서 들어보세요.”
딸이 이 노래를 좋아한다. 내가 20년 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똑같이 좋아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 가사를 엄마와 딸이라 생각하고 들어봐.”
오전부터 꾹 참고 있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마도 우리는 내년부터는 멀리 떨어져 살게 될 예정이라 더 애틋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헤어짐이 예정된 연인처럼 말이다.
(노래가사 : 사랑의 바보)
그렇게 말 하지마
제발 그녈 욕하지 말아줘
그 누구보다도 내겐 좋은 여자니까
내가 하고 싶어 잘해준걸 고맙다 말 못 들어도
잠시나마 웃어주면 난 행복해
…
원하는 좋은 사람 나타날 때 까지
난 잠시 그녈 지켜줄 뿐야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기에 그걸로도 감사해
…
언제든 필요할 땐 편히 날 쓰도록
늘 닿는 곳에 있어 줄 거야
어느 날 말 없이 떠나간대도
그 뒷모습까지도 사랑할래
…
언젠가 그녀가 날 떠날 걸 잘 알아
시작이 있음 끝도 있는 걸
그 시간이 알고 싶어서라도 끝까지 가보려 해 워
그렇게 불쌍한 듯 날 바라보지 마
그래도 나는 행복하니까
……
언젠가 그녀를 보내주는 날
그때 술이나 한잔 사주면 돼
연휴 동안 딸의 친구들이 다녀갔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그렇게 즐겁게 어울리지 못했다. 죽지못해 사는 회색빛 학생이었다. 딸이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내가 누리지 못했던 그 반짝거림을 그녀가 대신 살아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하다. 이곳에서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은 충분히 마음 편하고 즐겁게 머물다 가길 바란다.
십대, 이십대 초반의 ‘나’는 결혼을 안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가, 그녀 덕분에
벌써 19년째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초보 엄마다.
서툰 면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딸과 함께
인생의 반짝거림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사십대 중반 여인이 되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다.
나에게 과분한 딸이
내게로 와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