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에 대한 생각
2025.2.17 월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이사가 이제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사는 언제나 설렘보다는 스트레스가 큰 과정이다. 지금까지 몇 번의 이사를 했는지 세어보기도 싫을 만큼 자주 옮겨 다녔다. 친정 부모님과 함께한 26년 동안 단 한 번의 이사만 경험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거의 2년마다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사를 생각하면 ‘종합선물세트’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 회사 직원분들이 집에 방문할 때면 종종 사 오던 과자 세트. 화려한 포장 속에 어떤 과자가 들어 있을지 모르는 그 커다란 박스를 보면, 나와 세 동생은 둘러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스캔하며 자신이 원하는 과자를 재빠르게 골랐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빼앗기기 일쑤였고, 서로 먹고 싶은 게 겹치면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사는 그 종합선물세트와 닮았다. 분명 받아서 좋은데, 막상 열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있고, 전혀 원하지 않는 것도 있다. 때로는 ‘이거, 부피만 큰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무엇이 들어 있을지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이번에 떠나는 집은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정수기 설치, 이사 날짜, 이삿짐센터 계약, 가구 선택까지, 모든 과정에서 나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주도권이 나에게 있었기에 빈틈없이 계획하려 노력했고, 힘들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가정 내에서 ‘함께’ 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내게 미지의 영역이다. 상대가 어디까지 할지 모르니, 나는 어디까지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주도하는 방식에 익숙해서, 함께하는 일에서는 오히려 어려움을 느낀다.
게다가 나는 정리와 청소에 취약하다. 이 부분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알기에, 이번에는 정리를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집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면서 다급하게 짐을 옮기게 되었고, 예상보다 일주일이나 일찍 가구를 빼야 했다. 정리를 마칠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고,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아 더 날카로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영역에서 나는 쉽게 버거움을 느끼고, 효능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결국 ‘0’ 아니면 ‘1’, 해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정상 패턴으로 돌아갈 것이다.
꽃피는 3월,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날을 떠올리며 오늘을 버틴다. 그래, 잘할 필요는 없다. 해내기만 하면 된다. 내게 온 ‘이사’라는 종합선물세트를 기꺼이 받아들여, 하나씩 잘 풀어보자. 부디, 이번이 마지막 셀프 이사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