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4 수
"엄마, 그 필름 현상했어?"
오늘 딸아이는 모의고사를 쳤다. 친구들과 저녁 먹는다더니, 집에 일찍 돌아왔다. 파스타를 먹고 싶다길래, 저녁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이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꿈도 관련한 일들이다. 아이는 홍콩 여행에서 일회용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 사진들로 영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날부터, 아이는 내가 한국에 오자마자 현상소에 맡겼을 거라도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깜박했다.
아이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내 할 일이 많고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음이 툭 떨어졌다.
소중한 부탁을 받았는데도 놓쳐버렸다. 작은 일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의미 있는 기다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을 가볍게 여겼고, 그냥 지나쳤다.
외식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있다.
서랍 속에서 인화권을 찾았다. 주소를 적고, 일회용 카메라를 꺼냈다. 우체국 택배를 신청했다. 박스를 찾아 포장하고, 테이프를 붙였다. 하나하나 천천히 했다.
사실 나는 이런 일들을 귀찮아하는 편이다. 번거로운 일이 앞에 있으면 쉽게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내 귀찮음보다 아이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모든 걸 마치고 나니,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별거 아닌 일을 해냈을 뿐인데, 그 안에 아이가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친구의 재촉도 한 몫했다.
귀찮아서 미루던 일이었다. 그런데 사랑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달라졌다.
그동안 나는 가까운 이들에 대한 마음을 가볍게 여겨온 건 아닐까.
잘 잊어버리고.
쉽게 지나치기도 했다.
마음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 채.
사랑은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대를 기억해 주는 일, 그 마음을 소중히 여겨주는 일.
오늘 딸의 필름 속 마음의 무게만큼,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은 때때로 귀찮음을 넘는 힘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인 마음은, 기억 속에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