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떡볶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그 아련하게 어린 시절. 후문 조금 윗 편으로 햇님분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맵지만 달달하면서도 쫄깃한 밀떡과의 만남은 아마 그 쯤부터였을까. 분식점 아주머니께서 조금이라도 더 담아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또랑한 눈빛으로 컵에 담기는 떡들을 바라보았다. 한손에 쥔 300원치의 컵떡볶이에 세상을 다 가진마냥 그리도 행복했더랬다. 꼭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단 군것질거리로 그리도 사랑스러운 게 없을테지.
분식점 아주머니는 무심하게 사각 캔에 든 대용량 고추장을 주걱으로 퍽- 퍼내시곤 후에 곧 물엿을 콸콸 쏟아내셨다. 혹은 흰 설탕과 물을 추가하는 정도. 주걱으로 섞으면 양념은 그게 전부였다. 부재료는 어묵도 파도 아닌 조그맣게 잘린 핫도그 소시지 몇 점이었다. 뽀빠이 과자의 별사탕처럼, 드문 소시지를 먼저 찍어 먹고는 떡을 야무지게도 씹어먹었다.
어느날엔가 그 맛이 그리워, 집에서 여러번 같은 맛을 내기를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분식점에서 끓인 라면이 집에서 끓인 라면보다 맛있듯, 아무리 같은 레시피를 보고, 같은 방법으로 따라해보아도 따라갈 수 없는 맛이 있나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케찹을 넣었던 엄마의 떡볶이가 최악이었다. 나는 미식가도 아니건만 내게 고추장 베이스냐, 토마토 케찹 베이스냐는 엄격한 기준이다. (여담인데 양념치킨에도 토마토 케찹을 넣는 몇몇 몹쓸 집들이 있다.) 엄마는 딸내미의 비난 섞인 평가를 몇번 들으시고는 더 이상 떡볶이를 집에서 만들어주시지 않는다. 이로써 홈메이드는 실패다.
이제 집에서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깨끗이 접었다. 스스로 창조가 불가능하다면 타인이 창조한 것을 소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다음 단계는 '탐색'이다. 디델* 떡볶이(이하 '떡볶이' 생략) 아*, 죠*, 미미*, 동대문**, 병*, 국*, 스쿨** 등 수없이 많은 곳에서 떡볶이를 맛보았다. 지금은 프랜차이즈이지만 당시는 아니었던 먹쉬**, 돌쇠*** 등 꽤나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며 얼마나 다양한 떡볶이의 맛을 탐색했는지 모른다. 취향이지만 즉석떡볶이는 어쩐지 정감이 가지 않아 철판에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분식점 식의 떡볶이에 집중하는 중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내 입맛에 딱 맞는, 끊을 수 없는 맛의 떡볶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쯤되면, 내가 찾는 떡볶이의 맛은 실제로 존재한다기보단 이상 속에 갇혀버린 그리움 섞인 그 무언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맛이라는 것은 실제의 레시피 그대로 과학적인 평가를 넘어 그 음식에 대한 기대감, 먹는 당시의 분위기, 비주얼 등이 복잡적으로 뒤섞이면서 후에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자신하며 무언가 하나를 콕 집어서 대답하지를 못했었다. 그러던 내가 세월이 흘러갈 수록 숨길 수 없는 진실을 발견했으니, 곧 나는 떡볶이를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을만큼 좋아한다는 것.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고, 자꾸자꾸 생각나니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생각이 들더라.
맛이야 취향따라 떡볶이, 이게 뭔 맛이냐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떡볶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커플은 정말 행복한거라고' 이런 소박함이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먹는 그 소탈함 속에 웃고 떠들었던 것처럼. 떡볶이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자리는 격식 없는 자리다. 데이트 때에 식상한 소개팅 메뉴(보통 격식있는 파스타나 고급진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를 먹던가.)나 sns에 찍어올릴만큼의 화려한 메뉴가 아니어도 좋다. 내가 먹는 것을 내세워 애써 있어보일 이유가 없을 때(그것이 연인 사이에서든 친구 사이에서든) 떡을 나눌 수 있다.
나도 종종 분위기 혹은 감성이란 이름 하에 허세를 부리는 여자다. 그러나 떡볶이라야만 나의 허세를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 다만 떡볶이라서 헥헥거리며 매운거 먹고는 눈물, 콧물 찔끔거려도 좋다.
매운 맛을 느끼고 나면 곧 엔돌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아마 떡볶이 한접시를 맛있게 비운 후에는, 히히낙낙 너와 내가 함께 웃을 수 있을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