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지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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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채워야 할 빈칸을 고작 두 개만 남겨둔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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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두 칸만 채우면 다 끝나는 건데. 책을 덮어, 가방에 던져 넣고, 와다다다 집으로 달려가서 배불리 간식을 먹고, 하고 싶은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지?


한참 뒤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들여다보니, 기다랗고 검은 속눈썹들이 젖어 두 세 가닥씩 뭉쳐져 있었다.

맨발로 복도를 활보하거나 바닥을 기어 다니기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이 아이가, 소리도 없이 서러운 눈을 하고 울고 있었다.



"왜?"

아이는 연필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작은 강아지가 그려진 연필이라고 했다.

바닥에는 연필이 없었다. 아마 다른 아이가 실수로 가져가 버린 듯했다.


"내 꺼 써."

내 연필을 빌려주자 마자 아이는 서둘러 빈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빈칸이 두 개뿐인 줄 알았는데, 앞 장에 여러 군데의 빈칸이 있었다. 아이는 군말 하나 없이 그 빈칸들을 모두 채우고 얌전히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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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왜 울었을까?


지난번, 아이는 연필이 없어 혼이 났다. 필통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습관을 고치려 연필을 빌리는 데에 벌점을 부과했다. 아이는 벌점을 받고 연필을 빌렸지만, 빌려간 연필을 채 10분도 되기 전에 잃어버렸다.


아마도 오늘 아이는 벌점을 받아야 한다는 괴로움과, 연필 없이는 과제를 끝낼 수 없고 물론 집에도 갈 수 없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벌점 없이 과제를 잽싸게 끝내고 얼른 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 욕심이다.

집에 어서 가고 싶다면, 연필을 빌리는데 따르는 벌점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면 얼른 주위에 도움을 청해 좀 더 좋은 방법을 찾거나 말이다. 그런 감내함이나 방법의 강구 없이, '벌점 없이 / 과제를 대강 끝내고 / 얼른 집에 간다' 를 모두 해내는 건, 욕심인 것이다.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던 아이는, 울적하게 앉아있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데에 한참의 시간을 사용했다. 나는 그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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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하지 못한 건, 아이와 같은 나여서 그랬을 것이다.

아이를 보며 비로소 깊게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슬픔이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줄 알았지, 욕심이 슬픔을 낳고 슬픔이 무력감을 빚는 줄은 잘 몰랐다. 그렇게 깊고 질깃한 뿌리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러니 하릴없이 아이의 젖은 속눈썹만 끔뻑끔뻑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_ 이 고백을 아이에게 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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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과 경험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다가오는 것임을 안다.

그치만 아이와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없을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조금씩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두 손 가득 쥐고 있는 욕심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조금쯤은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그러고 난 뒤의 빈 손은 옆 사람에게 뻗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겸허한 마음으로 질문을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욕심이 나를 밀어붙여 슬픔과 무력감의 늪에 빠져들기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툭툭 털고 가던 길을 마저 꼬박꼬박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다. 나를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들이 많지 않다는 걸 점점 더 느끼기 때문이겠다. 물론 아이에겐 조금 더 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눈물의 시간은 줄어드는 편이 아무래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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