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같은 백화점 문화센터 요리교실에 대하여

콩나물 대하찜을 바칩니다.

by 릴리슈슈

-

오랫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각종 학원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백화점 문화센터의 <가정식 요리> 수업이었다. 수업은 월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있었다. 세상에, 월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백화점 문화센터에 가다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신분의 변화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근 10년 만의 일이었다. 가히 쇼생크 탈출급의 대자유였다.


수업에는 오랫동안 수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인 나는 쭈뼛거리며 그들 사이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요리 선생님은 아주 익숙하고 노련하게 수업을 진행했다. 이 곳에서 오랫동안 수업을 진행한 듯했다. 40-50분 동안 그녀는 홀로 세 가지 요리를 만들며 설명했다. 대단한 속도였고 군더더기 없는 내용이었다. 수강생들은 선생님을 좇아 부리나케 필기를 하며 요리를 관찰했다. 나도 덩달아 열심히 필기를 하며 생각했다.

'근데 우린 언제 만들지?'

선생님과 함께 차근차근 한 단계 한 단계를 따라가며 배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그게 아닌 분위기였다.


선생님의 요리는 순식간에 끝났다.

요리가 끝나갈 쯤부터 사람들이 슬금슬금 앞치마를 목에 걸기 시작했다.

"자 그럼 시작하세요." 라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람들은 일제히 재료 바구니를 향해 달려 나갔다. '어? 이거 익숙한 장면인데?'

영락없이 고등학교 때 급식을 타러 달려 나가던 친구들의 뒷모습이었다.


나는 무서워졌다.

다정한 고두심 언니랑 하나하나 차분히 알아가던 <오늘의 요리>를 상상했는데, 이 분위기는 <마스터쉐프코리아> 내지는 <한식대첩>이었다. 아. 수강생들이니 <비기너쉐프코리아>나, <한식개다리소반> 쯤 되겠다. 어쨌든 너무 무서웠다.



-

재료 바구니를 잽싸게 챙겨 온 유경험자들은 각자 재료 하나씩을 들고 조리를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모둠에는 무경험자들이 많았다. 무경험자들은 쭈뼛거리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눈치껏 재료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수업은 각개전투였다. 바삐 씻고 바삐 썰고 바삐 볶거나 끓였다. 문화센터는 정글 같았고, 사람들은 오늘의 요리를 향해 질주하는 맹수 같았다. 오직 요리를 신속히 해내는데 필요한 말과 동작들만 오갔다. 나는 무딘 손으로 콩나물의 꼬리를 따 씻어 올리며 생각했다.

'음식이 되기는 되는 거야?'


곧 그런 생각할 겨를도 사라졌다.

나를 비롯한 무경험자들은 다급히 움직였지만, 발이 느려 곧 잡아먹힐 초식동물 같아 보였다. 발과 손이 느렸던 우리 모둠은 가장 늦게 요리를 끝냈다. 우리가 허겁지겁 밥상을 차리고 있을 때, 맹수들이 가득했던 옆 모둠은 이미 시식을 마친 뒤 설거지까지 끝내고는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맹수들은 여유로웠다. 어찌나 여유로운지 미묘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

어쨌거나 '우리의' 요리가 완성되었다.

나는 콩나물과 대파와 대하 손질만 했을 뿐인데, <콩나물 대하찜>이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 아, 내가 한 것이 콩나물과 대파와 대하 손질뿐이어서 가능했던 걸까?

'하지만 아직 맛은 모르지.'


나는 밥 한술에 콩나물 대하찜과 두려움을 함께 얹었다.

한 입 우물거리자, 두려움은 사라지고 콩나물 대하찜만 남았다.

'아, 맛있다!'


'이 맛은!'

믿을 수 없게도 맛있는 콩나물 대하찜이었다.

게다가 이 맛은, '파는 맛'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파는 맛'. 나는 반드시 이 요리를 우리 집에다가 복음처럼 널리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한 거라곤 재료 손질뿐이었는데, 과연 혼자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게다가 나의 요리 DNA 속에는 '찜'이라는 폴더가 없다는 것을 되짚으며 다시 두려움이 들었다. 우리 집은 찜요리가 올라온 역사가 없기 때문. 그러나 나는 용기를 냈다. 대하와 콩나물을 샀다.



-

집에 돌아와 레시피를 펼쳐놓고 한참 요리를 하다, 찜요리의 꽃인 전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어쩔 수 없이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황급히 슈퍼를 다녀왔다. 하지만 나를 기다릴 수 없었던 콩나물은 그새 너무 많이 죽어있었다. 이쑤시개처럼 바짝 마른 콩나물들. 하지만 마저 마무리할 수밖에 없어 참기름으로 윤을 내어 식탁에 올렸다. 찜 옆에는 전분과 콩나물의 상관관계에 대한 변명을 반찬으로 곁들여 놓았다. 하지만 식구들은 반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콩나물 대하찜만 아주 맛있게 먹었다.

"맛있어?"

"응. 파는 맛이야."

파는 맛, 파는 맛. 최고의 찬사다.



-

그렇게 정글 속에서 질주하듯 배웠는데도 혼자서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맹수들에 쫓겨도, 시간에 쫓겨도, 이렇게 뭔가 배워지고 남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그렇게 구한 것으로 내 집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좋아한다. 좋다. 거친 문화센터 요리교실로 다시 들어갈 용기와 힘이 난다.


요리수업 하나에도 이럴진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죽했을까 싶다. 맹수 같았던 요리수업의 많은 어머니들 또한 그러했겠지. 그저 내 앞가림하는데 그쳤을 뿐인 나의 직장생활도 내게는 정글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온 저들의 정글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오랜 사냥 생활을 해온 세상의 모든 어머니 아버지에게, 경의를 담은 나의 콩나물 대하찜을 바치고 싶다.

이번엔 전분도 미리 사두고 콩나물도 통통하게 잘 살려둘 테니, 따끈하게 든든하게들 드시고 가셨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축, 졸업 : 졸업하기 좋은 나이. 서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