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욕실청소가 만병통치

반짝반짝 눈이 부셔 너너너너너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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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청소를 했다.

본격 백수가 되면서, 집안에 기여하는 바가 하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서 때마다 꼭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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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청소를 할 때는 해방감 비슷한 걸 느끼곤 한다.

알뜰한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뜨거운 물을 아껴 쓰는 습관이 있다. (물론 찬물도 아껴 쓴다.) 그래서 아직도 뜨거운 물을 마구 쓰는 게 괜히 불편한데, 욕실 청소라는 명분 하에서는 온수를 펑펑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습관이란 이렇게 우스꽝스럽다.


욕실청소는 지루하지 않다.

욕실은 세면대나 수납 선반, 유리, 바닥과 벽면의 타일, 각종 세면용품 등 다양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각각의 형태와 재질이 달라 청소하는 맛이 다채롭다.

유리와 스텐 수전의 물 얼룩을 부드러운 스펀지로 지워내면 각각 다른 느낌의 반짝임을 보인다. 타일과 타일 사이의 흰 줄들을 손잡이가 달린 거친 수세미로 따라 그어가면, 그 지나간 길이 더욱 하얗고 청초해진다. 플라스틱 선반은 수압이 센 샤워기 물로 가볍게 지나가기만 해도 먼지가 훌륭히 닦여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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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청소의 즐거움에는 양변기가 가장 큰 몫을 한다.

욕실 아이템 중 청소 후 기쁨과 뿌듯함을 안겨주지 않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욕실 청소의 메인은 역시 양변기다. 욕실의 구성요소 중 그 존재감이 단연 압도적일뿐더러, 불규칙한 디테일과 글래머러스함을 뽐내고 있어 역동적이며 겸손한 자세로 쪼그려서 청소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 특유의 모양새는 나의 섬세함을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또한 하얀색의 거대한 도기류이기에 그 뽀얀 빛깔과 매끄러움을 회복시켰을 때의 뿌듯함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깨어지기 쉽기에 더욱 조심스레 접근하게 되기도 한다.


양변기는 욕실 청소의 메인일 뿐만 아니라 화룡점정이다.

청소를 모두 마치고, 세척은 끝냈지만 아직 세제가 고여있는 양변기의 물을 버튼을 눌러 힘차게 흘려보내면,

!

모든 얼룩이 빠르게 흘러 나가고 새로운 물이 그 자리를 완전히 대신하여 채우는 순간, 그때 느껴지는 내면의 고요한 희열은 '정화'와 '배설'이라는 의미의 언어 그대로의 '카타르시스'다.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그만의 특유한 후련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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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욕실청소 후에는 유난히 기분이 상쾌하다.

뜨거운 물로 살균 소독한 기분, 촉촉한 기분, 묵은 것이 씻겨 내려가고 새로운 깨끗한 것이 채워지는 기분이 된다.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은 이 기분. 돌아보면 자신감이 바닥을 쳤을 때, 무력감에 짓눌려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욕실 청소가 나를 꺼내 줬던 기억이 난다.


청소를 모두 마치고 욕실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반짝거리는 욕실을 바라보았다. 마음도 따라 반짝거리는 걸 보니, 욕실청소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 준 것이 확실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쾌활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오랫동안 잃었던 기대감도 고개를 빼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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