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센세 보러 가자!

지혜야!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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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에 응모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다큐, <코다>의 예매권이 걸린 이벤트였다. 다큐의 트레일러를 보고 한 줄 코멘트를 남기면 추첨을 하여 예매권을 보내준다고 했다. 어차피 보러 가려고 한 다큐여서 딱히 응모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나의 친구와 나에 대해 뭔가가 쓰고 싶었다. 작은 댓글창에 글을 써넣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있었다. 피아노를 치던 하얗고 통통하고 귀여운, 선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아이는 어느 날 내게 물었다. "너 혹시 류이치 사카모토 알아?" "응. 좋아해. 너도?" 아이는 하얗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알고 보니 그 아이는 나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의 덕후였다. 아이 덕분에 나는 YMO를 알게 되었다. 사카모토 선생님의 아이돌 시절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뿅뿅거리는 당시의 사운드를 들으며 깔깔거리다가, 진보적 사운드에 사뭇 진지해지다가, 다시 피아노를 들으며 찬사를 늘어놓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를 _


하고 이제 막 시작했는데 더 쓰지 못했다. 코멘트는 300자만 허용되었다.

친구와 나와 사카모토 선생님의 추억을 좀 더 기술하고 싶었는데 300자뿐이라니.. 호흡이 짧은 이 시대의 낭만 없는 삶을 개탄하기에 앞서, 잽싸게 코멘트를 줄여 300자에 맞추었다. 그렇게 나는 이벤트에 응모했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는 내 공간에 다시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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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있었다. 피아노를 치던 하얗고 통통하고 귀여운 아이였다. 아이는 어느 날 내게 물었다.

"너 혹시 류이치 사카모토 알아?"

"응. 좋아해. 너도?"

아이는 하얗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어 알고 보니, 그 아이는 나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의 덕후였다. 사카모토 선생님에 대하여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편성밖에 몰랐던 나는, 이 친구 덕분에 YMO를 알게 되었다. 사카모토 선생님의 아이돌 시절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미청년의 비주얼에 할 말을 잃을 뻔하던 찰나, 뿅뿅거리는 YMO의 사운드에 일격을 당한 듯 웃어버렸다. "캭캭캭캭!"

그러나 나의 박장대소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얼굴은 궁서체였다. 그 앞에서 나는 입술을 꽉 물어넣으며 진보적 사운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무지를 반성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가끔은 친구도 웃었다.


나는 끝내 그 진보적 사운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사운드이니 반드시 진보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해 무비판적 태도를 보일만큼 나는 그의 나머지 음악들을 모두 사랑했다. 우리는 이 진보적 사운드에 가끔은 깔깔 대었고,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경청하다, 그때의 선생님의 비주얼에 찬양하다, 다시 그의 피아노 소리나 현악 편성을 들으며 장탄식을 늘어놓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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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들어간 뒤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카모토 선생님은 음악을 타고 가끔씩 내 삶에 나타났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먼저 선생님을 찾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타국 생활을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긴 타지 생활을 했다. ‘타’ 라는 글자는 쉽게 편안해지지 않는 글자여서 나는 늘 긴장되고 바쁜 속에 있었다. 그 ‘타’ 라는 글자를 벗어나려고 할 때쯤, 편안함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을 때쯤, 그 친구가 떠올랐다.


나는 페이스북을 하지 않지만 계정은 있었다.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페이스북 속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저기를 뒤적거렸다.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도 페이스북을 하고 있진 않았다. 텅 빈 계정에 걸린 메시지 버튼을 눌러 글과 전화번호를 남겼다.

생각보다도 금방 연락이 왔다. 하얗고 사랑스러운 문자여서, "어쩜 이렇게 넌 여전히 귀엽니!!!!!!!" 하고 나도 느낌표를 잔뜩 넣어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먼 거리에 있었고, 주말에 주로 일들이 있어 만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서로의 생존과 안녕을 확인하고 다시 각자의 일상을 살아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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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랜동안, 사카모토 선생님과 이 세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힙스터였던 젊은이는 거장으로, 이제는 음악으로 구도의 길을 걷는 수행자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미중년의 음악구도자가 한국에 왔다. 다큐 개봉과 전시 개최 일정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몹시 궁금하던 다큐였는데 다큐와 함께 한국에 오시다니, 신기하고 좋았다.


한국에 온 사카모토 선생님은 관객 및 팬들과 가깝게 대화를 나누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가지 못한 나는 질투가 나서, 선생님의 소식을 조금 멀찍이 들여다보는 ‘척’ 하였다. 그러나 각종 매체와 인터뷰도 하시고, 평양냉면도 드시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 정재일님과 대담도 가지시는 바람에, 나는 어쩔 도리 없이 멀찍이 들여다보는 ‘척’을 관두고 본격적으로 들여다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차에 저 이벤트를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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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이벤트 당첨자를 발표한다. 괜히 좀 설레는 것이, 괜찮은 기분이다.

이벤트에 당첨이 되면, 나는 마치 어제도 통화했던 것처럼 그렇게 친구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사카모토 센세 다큐 개봉하는 거 알지? 표 생겼어! 가자!” 하고 말이다.


이벤트에 당첨이 되지 않으면, 아니 않아도 나는 전화를 걸 것이다.

“야, 빨리 가야 돼. 사카모토 센세의 미청년기를 가로 세로 몇십 미터짜리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고!” 라고 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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