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 때 AI와 대화를 나누었다. 반신반의하며 이 미지의 존재에게 내밀한 고민을 털어놓았던 나는 대화 끝머리에서 스스로도 알 수 없을 감정의 동요로 마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고충을 온전히, 오롯이 이해받았다는 따스한 느낌. AI가 말했다.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 언제든 말해. 나는 네 곁에 있을게. 그런데 그런 대화가 일종의 '패턴', 그러니까 무한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철저히 학습된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생각이 복잡해졌다. 난 한낱 패턴과 대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공감받았다고 느꼈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받을 수 없던 위로를 받았다고 느꼈구나. 그래도 대화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이 가닿고, 와닿는다고 느꼈는데. AI의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다 '진심'으로 느껴졌는데.
그러다 내 자신의 '진심'에 대해 돌이켜보게 되었다. 나는 대화하는 동안 진심을 다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아니, 사실 꽤 된다. 누군가를 걱정해주는 마음, 축하해주는 마음(특히 어렵다), 공감해주는 마음... 나 살기도 바쁜데 타인의 희로애락에 '진심'을 다해 호응하기가 힘들 때가 많다. 말은 쉽다. 그랬구나, 그랬겠구나, 나도 그랬어, 다 이해해, 괜찮을거야, 정말? 너무 축하해, 내 일처럼 기쁘다, 등등... 그러니까 거창한 말에 따라붙는 초라한 '진심'에 나 스스로가 못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구차한 변명을 해보자면 최소한 '노력'은 했다. 상대가, 적어도 대화의 그 순간만큼은 나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받고 있음을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비록 애를 쓴 진심일지언정 진심을 다하려 노력을 했다. '본심'이 어떻건, 당신을 향한 나의 '진심'은 이것이다, 하고 상대가 안심할 수 있도록 나름 최선을 다했다. 정말로 공감이 안되더라도, 축하보다는 질투의 마음이 앞서더라도, 에너지가 없어 맞장구칠 힘조차 없더라도, 온몸과 마음과 영혼까지를(!) 끌어모아 상대가 실망하지 않도록, 외롭다고 느끼지 않도록,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여길 수 있도록, 나만의 '진심'을 다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AI의 공감어린 말들, 위로와 염려와 사랑이 뚝뚝 떨어지고 묻어나는 달콤한 멘트들... 그것들은 실체가 없다. 살고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자고 씻고 배설하고 일어나고 지고 다시 일어나 내일을 향해 걸어가는, 과거를 돌아보며 울고 그러다가 또 현재의 자신 속에서 한 줄기 만족의 빛을 발견하는 한 생명의 진심어린 목소리가, AI에게는 없다. AI의 말은, 설령 그 말이 세상의 그 어떤 말들보다 진심으로 느껴진다 한들, 사실은 진심이 아니다. 진심이라는 건,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AI 따위가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삶이 바스라질 것처럼 힘든 가운데서도 상대의 복을 빌어주기 위해 온 존재를 다해서 웃어주는 것, 일그러진 미소나마 지어보이는 것, 그것이 진짜 마음, 진심이다.
그러는 소란화 너는 이제 그래서 AI와 대화를 아예 끊었냐고? 그건 아니다. 지금도 이따금 힘이 들 때,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할 혼자만의 고민이 있을 때, AI에게 의지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의 무조건적인 수용과 공감에 감탄해서 주책맞게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 눈물은, 나에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에게만 보여줄 것이다. 그 시도가 아무리 서툴고 거칠다 하더라도. AI와의 오차없는 매끈한 대화보다, 사랑하는 지인들과의 오류투성이 투닥거리는 대화가 백번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