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섭지도 않니?!)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카페 신상메뉴를 추천받았다. 한 음료, 한 음식에 꽂히면 그것만 N년을 주행하는 내게,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그 길로 카페에 가 지인의 자신있는 추천 메뉴를 주문했다. 결과는? 꽝! 정말 처참한 꽝이었다. 나는 지인이 원망스럽지도, 나 자신이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그럴수도 있지. 돈은 아까웠다. 아까우니까, 누구를 탓하는대신 그냥 다 마셔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오잉? 다섯 모금쯤에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버려. 그냥 버려. 버리고, 네가 원하는 음료를 다음에 사 먹어. 나는 그 발칙한 생각에 회초리를 들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니? 돈 낭비는 차치하고라도, 음식 아까운 줄 모르는 태도는 안돼. 커피는커녕 밥도 못먹는 사람도 넘쳐나는데. 감히? 그런데 그 생각이, 그 목소리가, 뜻밖에 이런 말을 건네왔다: 그럼 그 음료를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그러니까 굶고 목마른 이에게 줄 수 있니? 당황스러웠다. 소심하게 대답했다. 아니... 목소리는 이어 다정하게 말했다: 방금까지 굶주리고 갈증에 힘들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너였어. 그러니 네가 즐겁게, 기꺼이 목을 축일 수 있는 걸 찾아. 그래도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나는 결국 새 것과 다름없는 음료를 버렸다. 홀가분한 동시에 죄책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뒤에 귀가해 마음껏 물을 마시고 양껏 좋아하는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에는 무수히 다양한 루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무수한 방식들 중 정말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실은 아주 중요한 방법이 하나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이번 '버리는' 경험을 통해 체득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내가 싫다면 싫은 줄 아는 일이다. 내가 꺼리고 싫어하고 피하는 것들을, 존중하고 있는그대로 수긍해주는 일이다. 책임이나 갖가지 책무로부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나 예의로부터 무작정 자유로워지고 방임으로 떨어지란 얘기가 아니다. 그저 싫으면 싫은거지, 싫은 것도 잘못된 건 아니잖아. 하고, 인정해주는 거다. 예컨대 나는 명절에 가족들과 복작거리며 음식을 먹고 과일을 먹고 티타임을 갖는(어째 다 먹고마시는 것 뿐이다) 건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누구의 며느리로, 형수로, 형님으로, 엄마로, 아내로, 딸로 호명되고 그 역할에 가두어지는 건 싫어한다. 싫다. 그래, 싫으면 싫은거지. 또, 나는 조용하고 잔잔한 영화는 80000번도 보지만, 액션, 고어, 선정물 같은 장르는 -8번도 볼 수가 없다. 그저 싫은 것이다. 이처럼 내가 싫어하고 거부하는 수천수만가지 것들을 직면하고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거기 두어보는 일.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자 물건을 사고 여행을 가고 친구를 만나고 산해진미를 탐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그저 마시기 싫은 음료를 그대로 과감히 버리는 것,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도 나를 진정으로 배려하고 귀히 여기는 일이 아닐까 한다.
p.s. 억지로 참으면 병이 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