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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작가

의 친구인 나

by 소란화

내 친구 모모양은 아주 아주 인정받는 작가다. 매스컴에도 등장하고 그녀의 활동은 항상 긍정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녀가 처음 작가로 큰 성취를 이뤄냈을때 나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축하해주지 못했다. 너무나 어리고 치졸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탓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그녀는 거의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에 대해 나는 여전히 축하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었다. 참 인성 하나는 꾸준하다, 나란 여자. 인성 때문에 글에 진전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모양은 일찌감치 내 인성을 알아채고 그녀의 직업적 성공을 내게 구태여 자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지혜롭고 마음이 넓으며,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대중의 사랑과 문단의 인정을 두루 받고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지성미도 한몫한다 ).


나는 생각해보았다. 글로써 누군가의 인정, 사회적인 명성을 얻는 것이 내게 왜 그렇게도 중요하게 다가오는지. 인정과 부, 명성이 반드시 글을 통해서만 얻어져야 하는 것인지. 제사보다 제삿밥에 더 관심이 많다고, 나는 글보다 글로써 가질 수 있는 부대적인 것들에 더 큰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인지.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이런 천박한 내게 과연 글을 끼적일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모모양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생활을 하고 있을까.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두려웠다. 모모양의 글생활, 혹여 너무나도 청빈하다면, 내 것과는 너무도 크게 비교가 된다면, 나는 절로 무너져내릴 것 같아서. 완전히 녹다운( knock down )되어 전의를 상실해버릴 것 같아서. 모모양은 어느 순간 내가 오를 수 없는 저 높은 산 위로 솟아올라버린 것만 같다. 제법 친한 친구임에도 ( 물론 내 피셜이다. 내가 친한 친구로 느껴지는지는 그녀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 거리감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나는 천성이 개복치라 자기위안이 없으면 한순간도 숨쉴 수 없는 비겁한 여자이기 때문에 곧바로 이런 생각을 하기에 돌입했다: 글쓰기는 인정과 무관하다. 글을 잘 써서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찬사를 받는 것이 무용하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엄연히 객관적으로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있으며, 내 친구 모모양은 그것을 모두에게서 인정받았기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이다. 내가 방구석에서 홀로 노트북이나 핸드폰, 메모지나 다이어리에 끼적이는 글들, 그리고 그 글들을 끼적일 때의 내 마음은 남들에게 인정받는 일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다른 이들이 인정하든 무시하든, 내 글은 온전히 나의 것이므로. 내 글은 나의 현현이다. 자아표현이다. 나만의 독특한 바이브( vibe ) 이다. 내가 내 바이브대로 글 속에서 그루브를 타는데 거기에 인정이 왜 필요하고 찬사가 왜 있어야 할까. 마치 아무도 모르는 춤을 아무도 모르게 내 멋에 내 흥에 겨워 추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렇다. 나만의, 나만이 할 수 있는, 어쩌면 나만 즐겁고 나보기에만 뿌듯하지만 그럼에도 그것대로 충분한.


그래서 이렇게 기특한( ? ) 생각을 했으니 그럼 이제 모모양과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인가 ( ? ) 하면 그건 모르겠다. 모모양에게 애초에 속좁은 친구로 찍힌 전적이 있거니와, 사실상 내가 모모양의 삶에 얼마나 큰 비중이 있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이제야 비로소 모모양의 성공과 성과를 전심으로 축하하고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이 ( 도토리만큼 ) 생겼다는 사실이다. 인성 거지인 내게 이 정도 변화는 자축할 만하다. ( 짠해보여도 어쩔 수 없다 ) 그런데 나, 요즘 모모양은 원하지도 않을 모모양 홍보를 하고 돌아다닌다. 모모양이 내 ( 가까운 ) 지인이라는 점을 잊지않고 꼭 끼워넣으면서. 이건 또 무슨 못말리는 행보인지. 그러나 왜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잘 나가는 작가의 친구인 나. 꽤 괜찮은 포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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