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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진 사람이

뭐 어때서

by 소란화

대학생때 한 민간 대안교육 단체에 입사지원을 한 적이 있다. 교육철학과 방향성이 마음에 들었고, 그곳에서라면 즐겁고 신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면접을 보는 날, 긴장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나는 가장 나다운 자기소개서와 나다운 복장을 갖추고 면접관 앞에 앉았다. 내 소개서와 내 모습을 찬찬히 보던 면접관님이 대뜸 이런 말씀을 하셨다: <소란화씨는, 네모지다.> 네모?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굴이 각지다고? 면접관님이 친절한 표정으로 부연설명을 해주셨다: <사람이 뭐랄까, 둥근데가 없고 굉장히 긴장되어 있어. 그러니까 한마디로 노잼인 것 같달까.> 아. 네모와 노잼이 등치어였군!


결과적으로 그 단체에서 일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사람이 네모지다는 면접관님의 독특한 평가는 내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나는 그래서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둥글지 못하고, 모나고, 여기저기 '각'져 있는 긴장된 존재. 그것은 나의 아주 좋지 못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오죽 안좋으면 면접 자리에서까지 지적을 받을까! 고쳐보려 했지만, 이미 각져있는 걸 동글게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긴장을 풀고 여유로워질 수 있을지, 노잼스러운 티를 벗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한날, 지인에게 이 '네모'일화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지인이 대뜸 말했다: <근데 왜?> 응? 그가 덧붙였다. 네모난 게 어때서? 지인은 네모진 것들을 잘 보라고 했다. 그것들은 모두 안정감이 있다. 책상, 식탁, 건물, 스크린, 침대, 옷장... 당장에 떠오르는 건 주로 가구류 정도지만 아무튼 다 우리 생활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각'진 것들이다. 지인은 각진 것이 없다면 무엇으로 삶의 무질서를 붙들어매겠냐는 멋진 말을 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러면 나도 그리 노잼은 아닌 거겠지?그러나 지인은 단칼에 내 기대를 잘라버렸다. 아니, 소란화는 노잼이긴 해.


나는 노잼이지만 안정적이다. 안정적인 건 중요하다. 삶은 원초적으로 불안한 거니까. 나의 네모짐이, 나의 칼'각'이 누군가에게 안정이 될 수 있다면 그게 다소 노잼이라 하더라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거라 위안해본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재미는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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