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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an 03. 2023

나의 고향 묵호 그리고 서울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기억나세요? 엄마가 막내 낳던 날 다섯 살 된 저보고 “나가 놀다 와라! 엄마가 예쁜 동생 데려다줄게” 하셨죠? 저는 그저 나가 놀란 말에 신이 나서 삼월의 따스한 봄바람을 산들산들 뺨으로 느끼며 밖으로 뛰어나갔어요. 겨우내 입고 있던 빨간 내복은 다리에 감겨 간질간질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내복을 벗기엔 추운 날씨였어요. 집에 돌아왔을 때 보름달처럼 둥근 얼굴의 아기가 눈도 뜨지 못하고 입을 쫑긋거리고 있던 모습이 기억나요. 신기했어요.

동짓날 동틀 무렵 “미소야 일어나라. 나가서 새알 주워 와라.” 하시곤 했죠. 내가 잠결에 일어나 나가려고 하면 “엄마가 벌써 주워 왔지!” 하며 찹쌀가루로 동그랗게 만든 새알심을 보여 주고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동짓날 상을 행주로 닦으면 그새 살얼음이 얼어 팥죽 그릇이 상위에서 미끄럼을 타곤 해서 식구들 모두 웃었었죠. 그땐 참 즐겁고 행복했어요. 팥죽에 들어간 새알심을 좋아하는 나는 평소에 밥 한 공기도 못 먹으면서 팥죽 한 그릇 더 먹겠다고 해서 다들 놀라곤 했어요.

정월이 다가오면 엄마는 밤새 엿을 고아서 검은콩으로 강정을 만들곤 했어요. 네모나게 잘라 대바구니에 담아 놓고, 인삼도 쪄서 바구니에 담아 서늘한 곳에 두면 식구들이 한 개씩 꺼내먹곤 했었죠. 인삼은 풍기에서 인삼 농사지으시는 큰아버지가 보내 주셔서 어릴 땐 참 많이 먹었어요. 지금도 쌉싸름하고 달큼한 인삼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일요일이면 엄마와 손을 잡고 언덕 위에 있던 교회에 다니던 거 기억나요. 엄마는 내가 성경 암송대회에서 일등하고 상으로 왕자 파스 받아오면 “아이고 잘했다” 하시곤 했었죠. 그럴 때마다 저는 엄마 기뻐하시는 모습에 행복했어요.

내가 여덟 살 때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의처증이라며 서울 고모가 한약을 지어 왔는데 “내가 미쳤어? 약을 왜 먹어” 하시며 약사발을 마당에 던지시던 모습도요. 우물에 물 뜨러 갔다 오는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죽이겠다고 칼을 휘두르던 아버지. 예전엔 다정했었는데 왜 그러셨는지… 엄마 많이 힘드셨죠?

엄마가 나에게 말도 없이 떠나셨지만, 엄마 마음 이해해요. 초등학교 졸업식 때 오빠가 데리러 왔던 것도 기억나요. 엄마는 연희동에 있는 자동차정비소에서 구내식당을 하고 계셨었지요. 엄마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고 힘든 일에 바짝 여윈 모습을 보고도 어린 마음에 일만 하는 엄마가 싫어서 엄마가 심부름시키면 못 들은 척하곤 했어요. 그러면 엄마는 뭐라 말도 안 하시고 한숨지었었는데 미안해요. 엄마 난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어요. 식구들이 다시 같이 살았지만, 아버지의 의처증은 여전했고 엄마는 사는 것이 아주 많이 힘들어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으셨던 것 같아요. 나의 어리광을 받아주지도 못할 만큼 힘드셨던 거죠? 엄마 마음도 모르고 툴툴거려서 미안해요.

  내가 열여섯 살쯤 엄마는 아프셔서 일도 그만두고 집에서 기침이 심해서 앉아계셨었죠. 아버지는 아픈 엄마와 우리 네 남매를 두고 혼자 사시겠다고 대구로 가셨었죠. 엄마의 지시로 외숙모와 같이했던 김장은 유난히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그해 겨울, 쏟아지는 기침을 힘겹게 뱉으며 빨래하느라 동상으로 빨갛게 부어오른 나의 손을 잡고 “엄마가 빨리 아야 우리 미소 고생하지 않을 텐데” 하시면 눈물짓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엄마가 아프시더라도 내 곁에 오래오래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려운 살림에 약도 제대로 못 드시고 앓으시다가 정월 초여드레. 전날 언니 오면 쪄준다고 고구마 한 봉지 사놓으시고 하얀 눈이 담뿍담뿍 쏟아져 내리던 날 심한 기침 끝에 유명을 달리하셨죠. 엄마 나이 49세.

  엄마는 생전에 몸이 약해던 나에게 결혼하지 말고 수녀가 돼라 하셨었죠? 지금의 나는 결혼을 했고 두 딸의 엄마가 되었어요. 엄마랑 같이 아프셨던 김 집사님은 완쾌하셔서 엄마 장례식장에 오셨어요. “내가 더 아팠는데 나를 데려가지, 우리 장 집사를 먼저 데려가시면 어쩌냐?” 하시며 대성통곡하셨지만, 하느님께서 엄마가 필요해서 먼저 데려가셨다고 믿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삼우제를 지낸 뒤 피곤해 쓰러져 잠이 들었어요. 꿈속에서 우리 네 남매가 같이 엄마를 보았죠. 웃고 계셨어요. 마지막으로 보러 오신 건가요? 꿈에서 깨어나 엄마가 보고 싶어 많이 울었어요. 엄마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잘 지내기로 해요. 엄마 사랑해요. 어려서 뭘 몰라서 엄마에게 사랑한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 것도 후회가 되네요. 그래서 내 아이들에겐 늘 사랑한다고 말해요. 언제 헤어질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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