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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an 04. 2023

행복한 인생

콘서트장 풍경

   어느 날 시누이로 부터 연락이 왔다. 5월에 유명 가수 콘서트가 있는데 콘서트 티켓을 꼭 좀 구해달라고 하셨다. 인기 있는 가수라서 티켓 구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꼭 가고 싶은데 우리 애들에게 부탁해서 티켓을 구해 달라고 하셨다. 공연장 앞쪽에 있는 좋은 자리로 예약해드리고 싶었지만, 앞쪽 자리는 벌써 매진되어서 콘서트장 끝 쪽에 있는 자리로 간신히 예매했다. 두 장이 예매되어 한 장은 취소할까 했지만 고모는 유명 트로트 가수인데 아이돌 가수처럼 인기 많고 노래 잘하는 가수 공연이니 같이 가자고 한다.


  콘서트 전날 열무김치를 담그면서 들어본 가수의 노래는 가족에 관한 노래였다. 마음을 울리는 노래에 늦은 밤 괜스레 창문을 열고 어두운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달을 한참 바라보며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을 하다가 열무김치를 담갔다.


   공연당일 전철을 세 번 갈아타며 일산 킨텍스 공연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응원용 봉에 응원 티셔츠, 응원 머리띠를 착용한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하며 공연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DM 판매 부스에서 줄을 서서 한 보따리씩 덕질 물품들을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리는 콘서트라서 일까 몰려온 인파는 몇천 명 이상으로 보였다. 공연장의 가설로 만든 의자에는 아줌마들의 엉덩이를 배려한 방석들이 놓여 있었다. 가설물 맨 꼭대기 자리는 바닥으로부터 50m도 넘어 보였고 흔들거렸다.


  공연이 시작되고 주인공이 등장하자 아줌마들은 응원용 봉을 흔들며 연호했다. 가수가 노래를 시작하자 아줌마들은 소녀들로 변신했다. 응원용 봉이 변신하는 지팡이였나?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펄쩍 뛰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줌마들이 앉아있던 의자는 파도처럼 너울거렸고 금세라도 바닷속으로 빠질 듯 휘청거렸다. 공연이고 뭐고 나가야 하나 언젠가 공연을 보다가 가설로 만든 공연석이 무너져 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뉴스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노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튕겨 나가는 느낌이었다.

  

  노래 한 곡이 끝나자 모두 자리에 앉았고 나의 걱정은 조금 사라졌다. 노래도 잘하고 입담도 좋은 젊은 트로트 가수는 넙죽 절을 올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줌마들은 자지러질 듯 소리를 질러 댔다. 오늘 저녁 식구들 저녁밥이고 집안일이고 모두 던져버리고 이곳에 온 아줌마들은 지금 이 순간만큼, 엄마도 아내도 며느리도 아닌 소현, 민주, 미자, 정옥이와 같은 어린 소녀들의 콘서트장이었다. 가수의 말 한마디에 울다가 웃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떼쓰듯 “오늘 집에 안 갈 거야”라고 소리 지른다. 아줌마들의 감정 탈출구가  콘서트장은 그 길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길일지라도 직진하고 싶어 하는 아줌마들로 넘쳐났다. 같이 간 시누이도 해맑은 소녀처럼 오직 가수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공연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은 진통제였나 보다.


  하지만 마음은 소녀지만 몸은 중년의 아줌마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공연장 한쪽에 어울리지 않게 화장실이 오픈되어있고 노래를 들으며 환호를 지르는 순간순간에도 화장실 앞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중년의 나이 먹은 방광이여, 소변 저장능력이 떨어져 소변이 자주 마렵고 요도괄약근이 약해져 소변이 아직 차지 않았는데 소변이 마려워서 기대하던 공연장에 와서도 화장실을 자주 갈 수밖에 없는 웃픈 서글픔이 밀려왔다.

  

  공연이 끝났어도 “안 갈 거야” “안돼 가지 마” “앙코르!” “앙코르!”을 외치며 울던 아줌마들… 저러다 숨넘어가게 생겼네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지막 곡으로 아버지에 관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5월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울컥 감정이 북받쳤다. 공연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는 보고 싶어도 안 계시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삼 더 그리워지는 오월의 밤이지만 아내와 엄마와 며느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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