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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an 11. 2023

빌런

빌런 1부

*빌런(원래 '악당'을 뜻하는 말 최근에는 뭔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


미숙 씨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잠을 떨치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아침상을 대충 차렸다. 

어제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이랑 학교 가야 할 애 둘을 깨웠다. 

아침밥 먹고 남편은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교로 미숙 씨는 가게로 출근이다.   

  

술장사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은 장사해야 돈을 모은다며 몇 년 동안 미숙 씨를 졸랐다. 

사업 쉽게 생각했다가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고 결사반대했다. 

친정어머니가 자동차정비소 구내식당을 하면서 힘들어하셨던 걸 알고 있는 미숙 씨는 식당이나 술장사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막무가내로 회사에서 퇴사하고 조그맣게 무한리필 참치 집을 열었다. 

오픈 세일로 ‘참치 무한리필 기본 1인분 19,000원’이라고 배너를 내걸었더니, 입소문만 듣고 오는 손님이 많아서 두어 달 장사가 잘되었다. 남편은 돈을 모아서 근사한 참치 집을 차리겠다며 신나 했다.      


하지만 참치 무한 리필에 곁들이 음식까지 제공하려니까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되었다. 

남는 게 없어서 1인분 21,000원으로 가격을 올렸다. 거짓말처럼 손님이 뚝 끊어졌다. 

장사가 안되니까 당장 생활이 어려워졌다. 

월세도 내야 하고 아이들 학원비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아 고민 끝에 남편은 다시 유통업체에 취직했다. 퇴근하고 와서 도와주겠다는 남편 말만 믿고 장사를 하다 보니, 가게 일은 미숙 씨가 전담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회식을 핑계로 안 오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미숙 씨는 어린이집 주방일을 했었다. 

아침 7시까지 출근해서 아이들 오전 간식이랑 점심, 오후 간식까지 해주고 영아반 아기들 돌보다가 마지막 학부모가 아기를 데리고 가면 퇴근했다. 보통 8시면 귀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식집은 오전 아홉 시에 출근해서 밤 열두 시, 한시 넘겨서 퇴근하기 일쑤다. 

어제도 손님 둘이 “사장님 소주 한 병만 더 먹고 금방 갈게요.” 하면서 두시가 다 돼서야 일어섰다. 설거지하고 집에 오니 3시였다. 

      

피곤하지만 점심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소라를 곱게 다져서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쌀과 물을 넣어 오랜 시간 끓여내면 구수한 죽이 완성된다. 

죽을 보온밥통에 넣어놓고 손님이 오면 한 그릇씩 퍼준다. 

점심에 손님들은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초밥 정식을 많이 찾는다.

초밥 정식은 죽과 샐러드, 락교, 초 생강, 매운 절임 고추를 먼저 내간다. 서빙을 하는 사이 주방에서는 초밥 6알과 광어, 참치, 연어로 구성된 회 한 접시를 준비한다.

김과 묵은지, 참나물무침을 같이 내주고 온도를 올린 튀김 솥에 새우 한 마리 단호박 한쪽을 넣어 튀긴다. 

묽은 튀김반죽을 끓는 기름에 뿌린 뒤 빠르게 새우를 굴리면서 튀겨내면 바삭바삭하니 맛있는 튀김이 완성된다. 인기 만점이다. 날치알 마끼까지 제공하면 초밥 정식의 순서 끝이다. 

가격에 비해 만드는 게 너무 많은 메뉴다. 힘들고 번거로워서 없애고 싶지만, 많이 찾는 메뉴를 없애기는 마음처럼 쉽지 않다.  

    

점심 장사가 끝났다. 직원들이랑 늦은 점심을 먹은 미숙 씨는 굳어진 어깨를 주무르며, 종종걸음으로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갔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기분이다. 

“아 지겹다. 그만하고 싶다. 너무 힘들어.” 혼잣소리로 중얼거려보지만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려나. 

마트에서 포장용 용기와 양상추, 무순, 김, 양배추, 당근을 샀다. “감자 세일하네! 야채 튀김을 해볼까?” 


감자까지 한 봉지 사서 가게에 돌아오니 김 군이 저녁 장사 준비로 계란찜 재료를 만들고 있다.    

일 배우는 게 더디지만 성실한 친구다. 잘 가르치면 훌륭한 실장이 될 것이다. 

김 군과 처음에 같이 일을 할 때는 아주 답답했었다. 

일식학원을 막 졸업한 김 군은 칼을 들고 벌벌 떨며 회를 썰었다. 

횟감의 자투리를 많이 남기지 말아야 하는데 회 한 접시 썰고 나면 자투리도 한 접시가 나왔다. 이래서야 남는 것도 없겠네. 그래도 어쩌랴 가르쳐가며 장사해야지.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포장이나 배달용 회는 미숙 씨가 만들어서 보낸다.     

 

경력 있는 실장을 채용해서 장사할 때는 실장들과 싸움도 많이 했다. 

청소하라고 마포 걸레를 줬더니 내가 청소하러 왔냐며 걸레를 집어던지고 그만두는 실장도 있었다. 

어떤 실장은 기본 참치 시킨 손님에게 비싼 참다랑어 뱃살을 뚝뚝 잘라주고 술과 팁을 달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실장도 있었다. 

참치 횟집은 실장 얼굴 보고 오는 손님이 많다. 실장이 없으면 왔던 손님도 그냥 가버리니 울며 겨자 먹기로 실장 비위를 맞춰가며 장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경력 있는 실장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이번에는 잘 채용한 것 같아서 흐뭇하다.    

  

“지금 장사하나요?” 아직 다섯 시도 안 되었는데 깔끔한 얼굴에 단정한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아직 시간이 이르지만 오는 손님 돌려보낼 수는 없다. 

“들어오세요.” 1번 테이블 의자에 윗옷을 벗어 걸쳐두고 물수건으로 손을 닦는다. 

“뭐로 준비해 드릴까요?” 메뉴판을 잠깐 들여다본다. 

“VIP 골드로 주세요” 저녁 첫 손님인데 일 인분에 칠만 원 하는 메뉴를 시키다니 오늘은 장사가 좀 되려나 하고 미숙 씨는 기대해 본다.   

   

죽과 미소 장국, 샐러드와 참나물무침을 손님 앞에 내려놓고 돌아서는 순간,

 “미안하지만 따뜻한 물로 주시겠어요?” 

“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느낌이 좀 안 좋았지만 비싼 메뉴 시켰는데 까짓 더운물 한 컵이야. 

기분 좋은 미숙 씨는 콧소리를 내며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서 얼른 갖다주었다. 

“미안하지만 샐러드는 소스 빼고 주세요. 미리 말씀드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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