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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an 12. 2023

빌런

빌런 2부 끝

*빌런(원래 '악당'을 뜻하는 말 최근에는 뭔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


여섯 시쯤 되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가게로 들어왔다. 

새로 온 손님에게 물과 물티슈, 메뉴판들 갖다주고 주문을 받고 죽과 미소 장국을 그릇에 담았다. 

손님들이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미숙 씨는 장사가 잘되는 것도 좋지만 마음이 바빠졌다. 

저녁 손님들은 회와 술 위주로 시키니까 할 일이 더 많다. 

미리 천사채로 봉을 잡아서 회 접시를 세팅해 놨지만 김 군이 회를 제대로 썰어 줄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홀 직원이 주문받는 동안 기본 반찬을 상에 차려 내주었다. 점심과는 달리 계란찜도 해야 하고 꽁치구이도 해야 한다. 메뉴에 따라 나가는 음식들이 다르니까 긴장하지 않으면 제시간에 음식을 내보낼 수 없다. 음식이 늦어지면 손님들은 왜 안 나오냐고 닦달을 해댈 것이다. 

머릿속으론 주문받은 메뉴를 생각하면서 계란찜을 하다 말고 회 접시를 꺼내서 최대한 예쁜 모양을 잡아 회를 뜨기 시작했다.   

   

“사장님 회 안 나오나요?” 1번 테이블 손님이다. “네 잠시만요.” 이럴 때 남편이라도 회를 썰고 손님을 응대해 주면 이렇게까지 바쁘진 않을 텐데 짜증이 밀려온다.

“사장님 미안하지만, 가루 고추냉이 있나요?” 1번 테이블 손님이다.

“잠시만요 저희가 생 고추냉이만 사용하는데 가루 고추냉이는 찾아볼게요.”

‘바빠서 정신없는데, 없는 걸 왜 찾아’ 마음속에 짜증이 쌓인다. 재료 선반에서  가루 고추냉이 봉투를 발견했다. 다행이다. 정수기에서 더운물을 조금 섞어 가루 고추냉이를 먹기 좋게 만들어서 그릇에 담아 갖다 줬다.   

“사장님 더운물 한 컵 더 주세요.”


“네 말순 씨 1번 테이블 더운물 좀 갖다 주세요” 

홀에서 서빙하던 말순 씨가 정수기 앞으로 오면서 “사장님 미스 진이라고 부르라니까 말순 씨가 뭐야”

 “미안 바빠서 깜박했네.” 아기 엄마에 40대 중반 아줌마가 미스 진은 또 뭐람.

 “여기 참나물무침 좀 더 주세요” 2번 테이블 손님이다. 참나물무침은 손님상에 나가기 직전 바로 무쳐서 나간다. 초대리와 날치알로 무쳐내면 손님들이 좋아한다. 

2번 테이블 손님들은 단골손님이다. 오면 늘 참나물무침 세 접시에 묵은지 세 접시는 기본이다. 야채로 배 채우러 온 것 같지만 회도 엄청나게 먹는다. 

무한리필이라 회가 계속 나가야 해서 미리 꽁치구이나 계란찜을 갖다 주지만,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회가 빨리 안 나오냐고 보챈다. 청양고추 넣고 오랜 시간 푹 조린 참치 무조림도 갖다 준다. 

“어머 사장님 무조림 너무 맛있다. 공깃밥도 하나 그리고 무조림도 좀 더 갖다 주세요.” 인간은 무한리필 앞에선 위가 무한리필로 확장되나 보다. 술이라도 먹으면 매상이 올라갈 텐데 콜라 한 병 주문하고 리필되는 음식만 먹고 있다.     


 “사장님 미안하지만, 날치알 빼고 참나물 좀 무쳐주세요. 소주도 한 병 더 주시고요” 1번 테이블 손님이다. 

이 사람은 남의 집 메뉴 레시피는 왜 자꾸 바꾸고 있나.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다 보니 다른 손님 응대할 틈이 없다. 

짜증 게이지가 위로 솟구친다. 참나물을 날치알 빼고 무쳐서 갖다주었다. 

1번 테이블 위에는 간장, 초고추장, 맛소금과 참기름이 담긴 쌍 초장기에 가루 고추냉이가 각각 들어가 있다. 

또 다른 쌍 초장기에는 간장과 초고추장이 섞여 있고 먹다 만 일회용 김은 수십 개가 뜯어져 있었다. 

미숙 씨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이를 물고 참아낸다.      

“손님 죄송하지만 김은 다 드신 뒤에 새것 뜯어서 드세요.” 

“어이쿠 사장님 미안해요. 내가 여러 개 뜯어놓고 먹는 게 버릇이 돼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 먹고 갈 겁니다.” 1번 테이블 손님은 정중하게 말하지만, 행동은 전혀 정중하지 않다. 이것저것 시키면서 김 군에게 자꾸 말을 건다. 김 군은 말하는 것과 회 써는 게 한 번에 안 되는지 칼은 든 채 1번 테이블 손님과 수다 삼매경이다. 


다른 손님들에게 나가야 하는 회 접시가 쌓여가고 있었다. 한숨이 푹 나온다.

 “김 군이 꽁치 구워졌는지 좀 봐라. 계란찜하고 4번 테이블에 내 가야 한다.”      

미숙 씨가 회칼을 들고 리필용 회를 빠르게 썰어 그릇에 담았다.

“미스 진 아줌마 3번 테이블 리필 좀 해드리세요.”

 “사장님 미스 진이라고 불러줘요. 아줌마는 또 뭐야” 

“아줌마보고 아줌마라 그러지, 그게 뭐 어때서!” 미숙 씨는 1번 테이블 손님 때문에 짜증 나는데 직원까지 시비를 거니 말에 짜증이 섞여 나간다. 

“아이 사장님 장난이야.” 궁둥이를 살살 흔들며 홀로 나간다. 


말순 씨는 미숙 씨가 장사를 안 해 봐서 자신보다 장사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은근히 무시한다. 남편이 있을 땐 조심하지만 없을 땐 장난인 척 미숙 씨에게 말을 함부로 하곤 한다. 기분 나쁘고 짜증 나지만 사소한 일로 사람을 내보낼 수는 없다.     

열한 시가 되어가니 손님들이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회를 찔끔찔끔 먹고 있는 1번 테이블 손님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여섯 시간째다.

 “손님 저희 11시가 마감인데요”

 “네네! 금방 갑니다. 회 몇 점만 더 주세요. 요것만 먹고 일어날게요” 소주 2병을 여섯 시간 동안 마시고 있다. 열두 시가 돼서 손님은 일곱 시간을 채우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처음 올 때 깔끔했던 인상은 보이지 않고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잘 먹었습니다” 하고 나간다.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상을 보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빌런이 따로 없다. 일곱 시간을 뭉개고 앉아서 요구사항은 많고 음식상은 밥상인지 쓰레기통인지 빈 곳 하나 없이 쓰레기와 소스들로 범벅을 해놓고 갔다. 

직원들은 먼저 퇴근하고 설거지와 정리는 미숙 씨 몫이다. 

짜증 게이지 100%를 채운 채 상을 치우고 있는데 남편이 왔다.

“미안해 오늘 회식이 있어서” 

“미안 미안? 그놈에 미안해 소리 좀 집어치워!” 징글징글하다. ‘미안하지만’을 앞에 붙인 채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시라고 하던 1번 테이블 빌런이 떠올라 남편에게 행주를 집어던졌다. 

“꼴 보기 싫어  설거지나 해 이 원수 같은 인간아!” 남편은 영문도 모르고 설거지하기 시작한다. 

“그놈에 인간 또 오기만 해 봐라! 욕 한 바가지 해서 쫓아내고 말 거야” 

미숙 씨의 하루는 이렇게 또 지나가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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