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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an 13. 2023

빌런[엽편소설]

수호천사와 마니또

진순 씨는 오늘 일어난 일이 이해되지 않았다. 12월 초순이니 갑자기 눈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일기예보에도 눈이 올 거란 얘기는 없었다. 아니 비 온다는 소리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리털 베개가 터지듯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아파트 정문을 막 나서는 순간이었다. 하필 그때 마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것도 이상하긴 하다. 그날 쓸 대파가 조금 모자랄 것 같기는 했다. 저녁 메뉴로 육개장을 끓이려고 했으니까.

      

최근 아파트 앞에 있던 슈퍼마켓이 폐업했다. 

가까운 마트로 가려면 전철역 앞에 있는 마트나 걸어서 10분 거리의 수협마트까지 가야 해서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오후 3시 37분 횡단보도 앞. 차도도 자전거도로도 아닌 인도에서 자전거와 부딪쳤다. 저녁 메뉴에 넣을 대파와 숙주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을 나서기 전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아주 조금씩 흩날리는 게 보였다. 혹시 눈이 쏟아질지 모르니 우산과 장바구니를 챙겨 나섰다. 굳이 저녁에 대파와 숙주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마트에 다녀와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아파트 상가를 끼고 큰길로 나서면 바로 횡단보도다. 

갑자기 눈발이 굵어지면서 쏟아붓듯이 눈이 내렸다. 

우산을 가지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폈다.

 눈은 바람이 불어 가로 방향으로 내렸다. 

마치 누군가 제설기를 들고 진순 씨를 향해 공격하는 것 같았다. 

금세 벽에 눈이 붙었다. 우산을 눈이 오는 방향으로 들고 몸을 살짝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눈도 오는데 마트에 내일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나온 거 그냥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조금 빠르게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횡단보도 신호를 보기 위해 우산을 위로 들었다      


그때였다. 

검은색 파카를 입고 검은 모자에 검은색 마스크, 검은 자전거를 탄 사람이 쏜살같이 진순 씨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어머 피해야 해 하는 순간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자전거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피할 틈이 없었다.

 “아 악!”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 바퀴에 무릎이 부딪치면서 넘어졌다. 

진순 씨는 넘어지면서 오른손으로 땅을 짚었는데 뭔가 뚜두둑 소리가 느껴졌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진순 씨는 땅에 넘어진 채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뭔 일이 일어난 거야’ 무릎도 엉덩이도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자전거를 탔으면 자전거도로로 다녀야지 눈도 오는데 인도로 돌진하면 어떻게 해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화가 나서 진순은 소리를 빼액 질렀다. 

무엇보다 오른쪽 손목이 너무 아팠다. 금세 팔목이 부어올랐다.    

 

병원에서 손목뼈가 부러져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부러진 뼈를 맞춰야 한다며 팔을 잡아당겼다.

 “아악 아파요” “금방 끝나요 조금만 참으세요” 몇 번 더 당겨서 손목뼈를 맞추고 간이로 깁스했다. 

기본 검사를 하고 심전도랑 골다공증 검사도 했다.

 “뼈가 좀 약한 편이네요. 손목뼈가 분쇄골절이 돼서 핀은 넣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뼈가 부러지면서 핏줄이나 신경을 건들지 않아 다행이네요.”  의사는 무심한 듯 얘기했다.   

  

‘다행이라니 뼈가 부러졌는데 무슨 다행이야!’ 진순 씨는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화가 났다.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했다. 

6인실 창가 쪽 빈 침대가 있어서 임시로 깁스한 팔을 조심하며 침대에 누웠다.

 ‘대파 사러 나왔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그 시간에 갑자기 눈이 쏟아진 것도 이상했고 하필 그 시간에 자전거가 횡단보도를 건너 진순 씨에게 돌진한 것도 이상했다.   

   

우연이라기보다 누가 일부러 날씨와 자전거를 조작해서 사고를 만들었거나 누군가 미리 짜놓은 각본에 내가 휩쓸린 건 아닐까?

 진순 씨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거 혹시 꿈 아닐까? 기분 나쁜 꿈. 

자고 나면 아무 일 없을 거야. 애써 일어난 일을 부인하려고 애를 썼다.

수술이라니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고 무섭다. 

내가 오 분이나 십 분만 늦게 집에서 나왔더라면, 그때 갑자기 눈이 퍼붓듯 쏟아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자전거를 탄 가해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고 했다.

 귀신이 눈이라도 가렸던 걸까?

 도깨비가 장난이라도 친 걸까?. 

병원에 입원하고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보니 오른쪽 무릎 안쪽으로 자전거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무릎 바깥쪽은 땅에 부딪혀 상처가 나 있었고 손바닥 안쪽에도 넘어지면서 돌멩이라도 짚었는지 구슬만 한 상처가 깊이 패어 있었다. 

상처 난 곳을 치료받고 누워서 오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왜 이런 사고가 갑자기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자 다섯 명, 간병인이 세명 있었다. 병실은 밤이 깊어 다들 잠이 들었는지 코 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진순 씨는 잠이 오지 않았다. 일하는 카페엔 당분간 출근이 어렵다고 연락했다.     

 



“남의 마니또를 다치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다치게 한 적 없어 함박눈만 내리게 했지!”

“그런데 마니또 팔이 왜 부러집니까?” 

“그건 네가 제대로 수호하지 못한 탓이야. 그 순간 네가 한눈만 팔지 않았더라도 다칠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네가 자전거를 막았어야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고, 거리도 있었고 수호하지 못한 건 너의 잘못이야.” 

“물론 제가 신입이라 일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죠. 

“너무 심하잖아요.”

“심하다고? 몸의 상처만 상처가 아니야. 나의 마니또님을 생각하면 더 다쳐서 고생하고 반성해야 해”

“나의 마니또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 

1.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서 상대를 괴롭히는 행위. 

2. 그 행위, 행동 자체가 업무상의 적정범위가 넘었는가? 

3. 그런 행위로 인해 근로자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는가?”     


“잘못한 일 첫 번째 나중에 들어왔으면 선임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함에도 힘든 일은 핑계 대고 안 하고, 쉬운 일만 골라 하기. 그로 인해 3시 퇴근인 선임이 모든 일을 해놓고 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1시 30분 퇴근 시간 전에 퇴근하는 점. 

두 번째. 선임이 일을 가르쳐 주면 어렵고 힘들어도 일을 빨리 배워서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샌드위치 만드는 법 가르쳐 주려고 연습 삼아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힘들다고 세 개 만들고 본인만 시킨다고 짜증 내고 안 한 점.      


그 뒤로 더 이상 샌드위치 만드는 것은 선임이 해왔는데 며칠 뒤엔 샌드위치 만드는 법 안 가르쳐 준다며 선임에게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히려 화를 낸 점. 

이건 하극상 아닌가? 그런데도 선임인 나의 마니또님은 일하는 것도 힘든데 같이 일하는 사람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니까 그만두려고 생각하고 있어. 

수호천사인 내가 참다가 시간이 지나면 안 그러는지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었어. 

갈수록 더 기고만장해서 본인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하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 장난 좀 친 건데

 왜 그리 발끈해? 마음의 상처는 상처 아닌가? 

깁스하고 누워서 반성 좀 하시지. 반성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질 거야”     




‘뭐야 내 얘기인가? 요즘 세상에 남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딨어. 

다 자기 편한 대로 살지 적당히 근무하고 눈치 봐서 대충 퇴근하면 되는 거 아닌가?

 퇴근 시간인데도 미련하게 일하는 사람이 바보 아닌가? 

누가 알아주나? 알바는 그냥 대충 시간 채우면 되는 건데 자기가 뭐 직원이야?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지 한심하긴… 

수호천사? 마니또? 그런 게 어디 있어 웃기지 말라 그래’

잠결에 누군지 모를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괜히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김진순 씨 사고 낸 사람 연락이 안 되네요. 병원비는 자전거에 다치셨으니까 교통사고라서 의료보험적용이 안 돼요. 치료받고 가해자 찾아서 보상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수술도 받기 전에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럼 나 뺑소니 자전거에 치인 거였어?

경황이 없어서 119도 내가 불렀지만, 자전거 주인이 같이 온 줄 알았는데 도망갔다고? 

    

“반성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질 거야”


어젯밤에 들려왔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안돼 이럴 순 없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난 잘못한 거 없다고!’ 아픈 팔을 부여잡고 수술실로 향하면서 진순 씨는 절규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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