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 여행 가는 날이다. 오전 6시 30분 작은딸은 벌써 일어나 씻고 화장하고 있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어제 싸던 가방에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문단속은 잘했는지 체크했다.
오후 1시 10분 비행기였지만 다들 들떠서 아침도 거르고 공항으로 가자고 한다.
일인 일 캐리어를 끌고 현관을 나섰다. 살짝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상쾌했다. 집 앞 횡단보도에는 등교하는 초등학생, 중학생들로 북새통이었다. 드르륵드르륵, 드르륵드르륵 네 개의 캐리어 바퀴 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지나는 공원에는 매화꽃과 산수유가 피어나고 있었다. 곧 봄비가 오려는지 잔뜩 흐린 날씨다. 비가 오고 나면 만개할 꽃소식에 설레고, 여행지의 기대감에 설레는 아침이었다. 벚나무에 날아든 까마귀가 축하라도 하는 듯 아악 아악한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흐흐흐 크크크 소리 죽여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텔레파시처럼 전해지는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한 마음이었다.
신난다!
여행지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게 될지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전철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갔다. 집이 김포공항 근처라 평소 전철을 타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캐리어를 가지고 여행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즐거웠다. 오래전 큰딸이 학교에서 단체로 미국 여행 갔을 때 인천공항에 왔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했다. 인천 공항에 처음 가는 것 같았다. 아무튼 늙은이의 기억 따위 굳이 필요 없다. 오늘 내가 일본으로 첫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엄마 아빠에게 짐을 맡겨 놓고 휴대용 와이파이 기계인 ‘에그’ 대여하러 두 딸이 통신사 대리점으로 갔다. 다녀오는 동안 인천공항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전광판에 흐르는 그림의 물결,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같이 사용할 ‘에그’와 아이들이 사용할 것을 각자 짐에 챙겨 넣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와서 캐리어를 미리 수화물로 보내야 하는데 창구가 열리지 않고 있었다. 공항 내 식당에서 쫄면과 김밥, 떡볶이로 식사하고 나서 캐리어를 수화물로 보냈다. 그리고 작은 가방만 들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보안 검색대 통과 후 면세점이 있는 라운지는 많이 넓었다. 스누피를 테마로 만들어 놓은 탁자와 상품 진열이 예쁜 배스킨라빈스에서 느긋하게 커피 마셨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왕가의 산책이라는 테마로 왕과 중전, 상궁, 신하들이 차례로 행진하고 있었다. 왕의 분장을 하신 분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라이엇 게임즈에서 행사로 하는 게임을 하고 물 두 병 사은품으로 받아왔다.
12시 45분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1시 10분 이륙을 위해 비행기는 한참 동안 공항 활주로를 달렸다. 잠시 숨을 고르던 비행기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이륙을 시작했다. 조금 떨렸지만 흥분으로 가득한 마음을 다독였다. 비행기가 구름 위까지 날아올랐다. 멀리 집과 건물, 산들이 모형처럼 아련히 보였다. 구름 속을 지나 빛나는 태양 아래 비행기는 큰 소리 없이 이동했다. 구름 속을 헤치며 가는 비행기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채 안 되어 작은 섬들이 보였다. 제주도 가는 것보다 조금 더 걸린 것 같았다. 도착한 일본 간사이 공항. 작은 전철을 타고 간사이 공항 대합실로 이동했다. 입국심사를 받으며 손가락 지문도 등록하고 통과했다. 간사이 공항은 우리나라 김포공항보다 작아 보였다.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느낌이었다. 일본어와 함께 쓰여있는 한국어들이 있어서 크게 이국적인 느낌은 없었다.
간사이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미리 예매한 라피트 특급열차 승차권을 찾아왔다. 편의점 훼미리마트에서 빵과 과자, 음료를 샀다. 볶음 우동 빵도 궁금해서 구매했다.
간사이 공항과 오사카 시내를 연결하는 라피트 특급열차 창문이 커다란 동그라미 형태여서 특이했다.
명탐정 코난 만화영화에서 열차 여행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라피트 열차를 타고 맥주와 빵을 먹으며 창밖 풍경들을 구경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집들이 낮고 소박한 색으로 꾸며진 단층이 많았다. 단층집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아따 맘마의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낮은 아파트 어디에선가 아따 맘마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난카이 난바역 도착했다. 아이들은 2일간 전철과 주변 관광지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주유 패스를 찾아왔다. 여행의 모든 것을 미리 예매하고 예약해서 불편 없이 여행할 수 있게 준비해 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난바역에서 요츠바시선을 타고 히고바시역에서 내렸다.
웰리나 호텔 217, 218호에 짐을 갖다 놓고 나왔다.
큰아이가 꼭 가보고 싶어 했던 도톤보리 파이널 판타지 에오르제아 카페에 갔다.
파이널 판타지 게임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미리 예약했다.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게임 속 캐릭터의 대형 사진들이 걸려 있고 여기저기 캐릭터 피규어와 모형 장비들이 즐비했다. 사인과 캐릭터 인형이 들어있는 진열장도 보였다. 마니아들을 위한 게임 속 미니어처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게임 속처럼 꾸며 놓은 카페는 우리가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음료와 음식을 시키면 1 메뉴당 1개의 코스터를 줬다. 8가지의 음료와 음식을 시켰는데 코스터가 겹치는 그림 하나 없이 나와서 큰아이는 신나 했다.
그리고 8시에 추첨을 해서 상품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우리 테이블(14번)이 1등 당첨되었다. 1등 상으로 커다란 허니브레드를 준다고 했다. 언제 또 오게 될지 몰라 재방문 시 사용할 수 있는 쿠폰 대신 허니브레드로 주문했다. 정말 커다랗고 맛있는 크림과 장식이 잔뜩 올라간 허니브레드가 나왔다. 우리는 너무 신나서 다 같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가로, 세로, 높이 20센티 정도의 허니브레드와 주변에 뿌려진 콘푸라이트 위에 네 개의 예쁜 동전 초콜릿이 올려져 나왔다. 이미 식사로 배가 불렀지만, 남김없이 다 먹었다.
“이건 무조건 다 먹어야 해!”
입꼬리가 귀에 걸린 큰딸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식탁에 깔려있던 테이블 매트도 네 장 다 가져다가 200엔씩 주고 셀프 코팅을 했다.
도톤보리 거리로 나오니 상당한 인파들로 거리가 가득했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여기저기 가게들을 둘러보고, 글리코 상이 번쩍거리는 다리에도 가봤다. 공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노래도 하고 춤을 추는 사람, 판토 마임을 하는 사람. 석고상처럼 분장하고 서 있는 사람. 간판과 언어만 달랐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같구나. 에오르제아 카페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 생각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아침으로 먹을 빵, 컵라면과 과자, 물을 구입해서 들어왔다. 숙소는 욕조도 변기도 한국과 다르게 작았다. 피곤한 몸을 욕조에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 그렇게 타국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꿈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