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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ul 08. 2024

비 오는 날의 산책

나는 기억한다

며칠째 무덥고 무거웠던 날씨는 비가 오려고 그랬었나 보다. 일요일 아침 또옹 또옹 또드륵 또르륵 베란다 난간에 빗방울 부딪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나섰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다가 갑자기 퉁 퉁 퉁 두웅 울림소리가 난다. 우산을 쥐고 있는 손으로 빗소리가 울린다. 갑자기 토토로의 우산이 생각났다. 폴짝 뛰어야 하나?

우산을 쓰고 운동하는 사람, 강아지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 우산을 움켜쥐고 빠른 발걸음으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산으로 바람을 막으며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그동안 더위에 축 늘어져 있던 새싹 위로 방울방울 은방울이 통통 맺히고 있었다. 물을 머금은 클로버, 좀작살나무, 부들꽃, 원추리 꽃과 이름 모를 풀들이 과식이라도 했는지 파릇파릇 물을 먹고 오동통 살지고 윤기가 흐르는 모습이다. 비 내리는 도로도 무거운 소리가 난다. 차바퀴를 따라 감기는 물소리가 촤르륵 촤르륵 물이 따라 올라가 바퀴를 타고 내려온다. 비 오는 날은 평소에 들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린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니 쪼르르 쪼르르 땅속을 흐르는 물소리 틱틱틱틱 물방울이 보도블록에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모처럼 오는 비가 이렇게 시원하게 땅 위의 먼지와 땀을 씻어 주는구나. 몰아치는 바람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디선가 째 애액! 째 애액! 새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에서 비 피하는 새소리 인가 하고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눈에 띈 새 둥지 하나. 높은 나뭇가지 위에 커다란 새 둥지가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 새끼가 들어있는 둥지가 떨어질지 걱정에 찬 울음소리는 비명에 가깝게 들렸다. 나뭇가지에 비해 커다란 둥지는 비바람에 속절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저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쏟아져 내리는 비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 위태로운 둥지. 지금 저 새는 어떤 마음일까. 째 액 째 애액 소리만 지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져 왔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막막할까. 비가 조금씩 그치고 바람도 잦아드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저 새처럼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한 자락. 결혼하고 4~5년 정도 되었을 당시 석관동에 살았었다. 우리는 빌라 3층에 살고 있었다.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간 급한 연락을 받고 지인의 집으로 출동했다. 가는 길은 개울이 되어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중랑천 범람으로 반지하 방 이 집 저 집 비를 맞으며 넘쳐흐르는 빗물을 퍼내고 있었다. 지인의 집은 반지하였는데 현관으로 들어가면 주방과 화장실이 거실보다 높게 설계되어 있었다. 물은 거실은 점령하고 하수구와 주방 배수구로 역류해서 들어왔다.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왈칵왈칵 뿜어져 나왔다. 쓰레받기와 그릇으로 퍼냈다. 물은 계속 들어왔고 퍼내고 또 퍼내다 보니 날이 밝아 왔다. 비가 그치고 중랑천이 어느 정도 수위가 낮아지고 나서야 물 넘치는 게 멈추었다. 흙탕물로 얼룩진 거실 가구들, 물 막느라 사용했던 옷가지와 걸레들로 방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물은 더 들어오지 않아 방을 쓸고 닦고 뒷정리를 했다. 지인의 인사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같이 물을 퍼내고 뒷설거지를 한다는 것, 혼자 하는 것과 둘이 하는 것,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도움을 준다는 것은 마음을 준다는 의미와 같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줄 수 있다는 말. 도움 줄 수 있다는 말 모두 따뜻한 말이다.

아침 산책에서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 올렸다.

남을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뿌듯해지고 따뜻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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