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미야모토 테루는 20세기 후반 일본의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입니다. 데뷔작 『흙탕물 강』으로 제13회 다자이 오사무 상을 수상, 이듬해 『반딧불 강』으로 제78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습니다.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유미코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보고 싶습니다.
“자 보세요. 이 근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초록색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바다에 한 덩이가 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있지요. 커다란 물고기 떼가 밑바닥에서 솟아올라 파도 사이로 등지느러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작은 파도가 모인 것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고 아버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근방 어부 나부랭이들의 흐리멍덩한 눈에 한순간 꿈을 꾸게 하는 불온한 잔물결이라고”–10P-
유미코는 이 층집 창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환상의 빛에 대해 알려줍니다. 『환상의 빛』은 아름다운 표현으로 가득한 소설입니다. 소설 속 장면들은 무채색이 많이 섞인 수채화를 그리듯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한 폭의 그림 속을 여행하는 기분마저 듭니다. 소소기 마을의 해명(海鳴)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스케치하듯 예쁘게 그려서 보여줍니다. 냄새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마치 공중화장실 앞의 암모니아 냄새가 날 것 같습니다. 비바람이 온몸을 날릴 듯 불어오면서 튀는 물방울이 얼굴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는 내내 마음 아픈 이야기가 처연한 아름다움이 되어 마음을 울립니다.
유미코는 공중화장실의 방취액 냄새가 나는 열악한 목조아파트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남동생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막노동하면서 엉덩이를 발로 차이지만 항변 못 하는 어머니. 심약한 아버지는 옆집에서 일어난 동반자살의 최초발견자가 됩니다. 이에 따라 경찰서에서 고초를 겪게 되고, 기진맥진해진 아버지는 매번 집을 나가 길을 떠도는 어머니를 방치하게 됩니다. 곧 돌아오실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요. 하지만 할머니를 방바닥에 묻었다는 소문이 나고 급기야 방바닥을 파헤치는 해프닝까지 일어납니다.
무기력하고 힘든 삶을 사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유미코.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전남편은 중졸에 주변머리도 없어서 평생 부자 되기는 글렀다고 스스로 자조하는 인물입니다. 그래도 유미코는 결혼하고 더 행복해졌다고 수줍게 고백하지만 스물다섯의 남편은 열흘 뒤 자살합니다. 유미코는 자살한 남편에게 왜 그랬는지 혼잣말로 되물어 보곤 합니다.
그녀의 전남편은 죽기 열흘 전 새로 산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먼 곳까지 가서 자전거를 훔쳐 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의 사팔눈은 발작을 일으키고 되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에서 다른 사람의 얼굴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열흘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평소와 다르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밤늦게 경찰관은 남편이 전차에 치여 사고를 당했다고 알려 줍니다. 유미코는 아직 어린 아기와 그녀만 남겨두고 자살한 이유를 떠올려 보지만 알 수 없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전남편에게 많은 질문을 하며 혼자 말을 하는 버릇이 생깁니다. 당신은 왜 무엇 때문에 선로에서 자살했나요? 수없이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곱씹어 생각하지만,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전남편이 자살한 후 사 년이 지난 어느 날 동네 사람의 권유로 소소기 마을로 재혼하기 위해 떠납니다. 재혼하기 위해 어린 아들과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같이 가줄 사람 하나 없이 길을 떠나지만, 그녀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다시 집으로 돌아갈 핑계를 만들려고 하지만 그날따라 평소에 무뚝뚝하던 한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소조기 마을로 가게 됩니다.
그녀의 혼자 말하는 버릇은 재혼 후에도 계속됩니다. 어느 날 우연히 전남편과 비슷한 모습의 남자를 보게 되고 홀리듯 바닷가로 따라갑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는 뒤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멀어져 갔습니다. -중략- 이제 아무래도 좋아. 행복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죽는다고 해도 좋아 뿜어져 올랐다가 흩어져 날아가는 커다란 파도와 함께 그런 생각이 자꾸만 가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당신 죽었다는 것을, 저는 그때 확실히 실감했던 것입니다. 아아, 당신은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을까요.”-60P
유미코는 마음 깊이 숨겨져 있던 응어리진 슬픔을 피 토하듯 울음으로 토해 냅니다. 그리고 사랑했던 전남편을 마음에서 보내줍니다.
“아침놀에 물들어 불타는 숯불이 전면에 깔린 듯한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시뻘건 첫눈이 길에도 지붕에도 방파제에도 모래사장에도 쌓여있었습니다.” 68P
시뻘건 첫눈이라니 파도치는 바닷가에 펼쳐진 시뻘건 첫눈은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치게 아름답습니다. 섬찟하면서도 아름다운 첫눈은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전남편의 모습일까요? 그는 이름조차 작품에 없습니다. 스물다섯의 부인과 삼 개월 된 어린 아들을 남겨 놓고 자살해 버린 남편은 이름조차 남길 수 없을 만큼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뜻일까요? 너무 강렬한 표현이라 머릿속에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담백한 대구탕의 국물을 한 수저 먹는 느낌이었지만 그 끝에 밀려오는 청양고추의 알싸하고 매운맛 그것은 그녀의 피 토하는 마음같이 느껴집니다. 대구탕을 다 먹고 난 지금도 매운맛은 입안을 맴돌지만 마음은 따스함으로 가득 차 훈훈해집니다. 사랑스러운 유미코는 자기 아들 유이치와 남편 다미오의 딸 도모코와 함께 이전과는 다른 따뜻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미코가 느긋한 게으름을 피우며 앉아있는 이층 방으로 슬쩍 자리를 옮겨 봅니다. 저도 유미코의 나른함에 젖어 보고 싶습니다. 좋은 소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