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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경 Oct 21. 2024

여는 글
수제비의 추억

오랜만에 수제비를 해서 먹었다, 날씨도 선뜻선뜻 하니 수제비 먹기 좋은 계절이다. 수제비를 생각하면 맛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올라오는 한 장면. 아주 오래전 소금 수제비를 먹은 기억이 있다. 작은 창문이 있었고 부엌도 변변하지 않은 지금은 어딘지도 기억에 없는 집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네 남매를 두고 밀가루 한 부대를 사다 놓고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일하러 가셨다. 배는 풍랑이 심하면 며칠씩 들어오지 못할 때도 있었고 빨리 오실 때도 있었다. 풍어일 때 손에 맛있는 과자라도 사가지고 오시지만 허탕치고 돌아오시는 날엔 잡고기 서너 마리 들고 오시곤 했다. 살림은 늘 팍팍했고 아버지의 벌이만으로 살아가야 했던 우리는 아버지가 늘 고기를 많이 잡아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시기를 기다리곤 했다. 오빠와 언니, 남동생 네 남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굶지 않으려 먹은 수제비. 약간의 소금 맛만 나는 맹물에 끓인 수제비는 그저 물에 밀가루 반죽을 개어서 뜯어 넣고 만든 한 그릇의 음식일 뿐이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산 까치야 산 까치야 어디로 날아가니? 네가 울면 우리 임이 오신다 는데…. 너마저 울다 저 산 너머 날아가면은 우리 임은 언제 오나 너마저 내 곁에 있어 다오.” 이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서 부르며 언니와 같이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밀가루를 묻혀가며 수제비를 만들었다. 그 노래와 함께 만들어 먹던 수제비. 멸치도 육수도 없이 그저 맹물에 소금 조금 넣어 만든 그 음식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온다. 김치에 수제비만 덩그러니 냄비째로 붉은 장미 그려져 있던 양은 상위에 올려져 있었다.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허기를 달래곤 했다. 열악한 환경에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노래처럼 그 님을 기다렸다. 아니 아버지의 과자봉지를 기다리곤 했었다. 그 시절의 그 수제비는 추억 한 그릇이었다. 무 자르듯 내 기억은 거기에서 끝난다. 산까치의 노래와 멀건 수제비 한 그릇. 배고픔에 맛은 생각할 것 없이 허겁지겁 먹었던 수제비를 먹으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저마다의 추억이 있는 음식들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새롭게 추억 한 자락 들춰보고 옛일을 기억해 보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에겐 밍밍한 수제비가 아닌 그 한 그릇이 삶의 원동력이고 활력으로 다가온 수제비이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한 장면이 되어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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