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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Feb 06. 2023

나의 고향 묵호 그리고 서울

정월 대보름 날

한해의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날이다.

초등학교 이 학년 무렵이었다.

해도 뜨기 전 어두컴컴한 새벽.

“그늘아 그늘아” 하시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대답했다.

아버지는 “내 더위 사라” 하시며 웃으셨다. 잠결이었지만 아차 대답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월 대보름날은 더위 파는 날이라고 한다.

요즘은 여름에 에어컨과 선풍기도 있고, 더위를 피할 곳이 있지만 그때는 부채와 차가운 물로 더위를 식혀야 했었다.

그래서 내 더위를 팔면 덜 더우려나 하고 생각했었나 보다.

동트기 전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는 사람이 더위를 사야 했다.  그해 여름 무더위를 미리 걱정했었던 기억이 난다.      


일어나 보니 엄마는 용알 뜨러 우물에 가셨다고 했다.

정월대보름 밤사이 용이 우물에 알을 낳는다고 다.

첫닭이 울면 우물에 가서 용알을 뜨고 물동이에 담아 집으로 가져오면 복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엄마는 물만 떠오셨다.

우물에 가서 물을 떠 오는 엄마의 정성이 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버지는 귀밝이술을 조금 따라 주셨다.

귀밝이술을 마시면 일 년 내내 귓병 나지 않고,

부럼을 깨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며 챙겨주셨다.

술과 부럼을 나누어 주시며 행복하게 미소 짓던 아버지.    


엄마는 오곡밥에 묵은 나물 반찬과 김을 상위에 올리 아침상을 준비하셨다.

찹쌀, 콩, 팥, 수수, 차조가 들어있어 쫀득쫀득 맛있는 오곡밥과 김.

오곡밥을 김에 싸서 먹는 것은 복을 싸서 먹는다고 해서 복 쌈이라고 했다.

김과 오곡밥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거기에 복을 싸서 먹는다고 생각하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침 먹고 오빠는 밖으로 놀러 갈 준비를 했다.

동네 아이들과 쥐불놀이할 거라며 깡통에 대못으로 구멍을 뚫었다.

철사로 길게 손잡이를 단 깡통에 구멍을 돌아가면서 뚫고 관솔을 담은 뒤 불을 붙여서 숯이 되도록 태웠다.

그 깡통을 어두워지고 달이 뜨면 힘차게 돌렸다.

그러면 깡통 속의 숯에 불이 달아오르며 멋진 불꽃 쇼를 볼 수 있었다.

불이 날까 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많이 했다.


오빠는 다칠 수도 있으니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나갔지만, 언니와 나는 몰래 초등학교 운동장 근처로 구경 갔다.      

보름달이 떠오르자 초등학교 너머 야산에 짚단을 묶고 불을 지피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신호로 논둑과 밭둑에 불을 질렀다. 논둑 밭둑을 태우면 겨우내 잠들어 있던 해충과 들쥐들이 타 죽거나 도망간다고 했다.

불로 소독을 했던 것 같다.

타고난 재는 거름이 되어 농사가 더 잘 된다고 하니 일거양득이었다.

겨울이라 말라죽은 풀은 불을 붙이자 불꽃이 피어나는 듯하다가 빨갛게 작은 불티만 남기고 타들어 갔다.

마치 작은 별똥별들이 논둑에 가득 내려앉아 빛을 내는 것처럼 장관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겅중겅중 뛰면서 불씨들을 고무신 신은 발로 밟아 끄며 놀았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남자들이 두 편으로 길게 늘어서서 쥐불놀이 깡통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불꽃이 현란하게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타올랐다.

보고만 있어도 흥이 났다. 흥에 겨워 깡통을 돌리던 남자들이 깡통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것 같았다. 싸움이 난 것 같았다. 누구라도 다치면 어쩌나 겁도 나고 무섭기도 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오빠가 학교 운동장에서 쥐불놀이하다가 싸우나 봐요”.

방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셨다.

“이놈의 자식 불나면 어쩌려고…”

신나게 놀던 오빠는 아버지에게 잡혀서 돌아왔고, 불에 그을린 얼굴로 나를 째려보았다.     

 

달이 떠오르자 어머니는 우물에서 길어온 물을 장독 위에 한 대접 떠 놓으셨다.

두 손 모아 식구들의 건강을 기원하셨다.

맑은 정화수에 보름달이 둥실 떠 있었다. 엄마는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손끝에 걸린 보름달이 엄마의 소원을 정말 이루어 줄 것 같았다.

나는 소리 내면 안 될 것 같아 숨죽이고 엄마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묵호에서 살았던 우리 식구들은 가난했지만 행복했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네 남매가 웃고 떠들며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곤 하셨다.

그 후로 행복한 모습보다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 엄마의 소리 죽여 우시던 모습이 점점 더 늘어갔다.

그래서  행복했던 그 시절의 추억이 더 그립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마지막 남은 행복한 추억의 작은 자락처럼.


뉴스에서 올해 처음 떠오르는 보름달은 올 한 해 중 가장 작은 미니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장에서 돌아오는 길 아파트사이로 떠오른 화이트문이 인상적이었다.

달이야 크든 작든 한해의 첫 보름달이니 대보름달을 보며 식구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빌어야겠다.

엄마의 간절한 기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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