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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편 May 09. 2023

좁은 집 육아, 넓은 숲 육아

< 네 번째 집, 어쩔 수 없이 매매한 빌라>


언젠가 내 집을 사게 될 때가 오면 신중하게 고르고 고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 번째 집에서 집주인이 나가달라고 했을 때 만삭이었고, 다급한 사정과 반대로 부동산 시장엔 전세 매물이 씨가 말라 있었다. (2015년, 서울의 친정 근처 상황) 게다가 수완이 좋은 공인중개사를 만나 자세히 알아보지도 못하고, 15평 빌라를 덥석 구입하게 되었다.


그래도 처음 갖게 된 우리 집이고 아이들과 함께 할 집이라고 깨끗하게 올수리를 했다. 집주인 신경 쓸 일 없고, 고장 날 곳 별로 없고,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바꿔 놓았고, 육아야 누구나 하는 것이니 이제 평탄한 날들이 펼쳐지리라고 생각했다.



아.. 하지만 연년생 육아는 의지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육아 세계였다.



첫째는 분유를 둘째는 이유식을 준비해야 했고, 둘째가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을 때 첫째가 아장아장 걸으며 누운 아기에게로 위태롭게 다가갔다. 첫째가 번개처럼 새로운 물건을 수집해 바닥에 확 뿌리면 기어 다니던 둘째가 냉큼 집어 입으로 가져가 꿀꺽 삼켜버렸다. 용하게 내적으로 캑캑거리고 있는 아이를 조금만 늦게 발견했으면 어쨌을까 하는 순간도 있었다. 잠들고 깨는 시간도 달라서 얼마간은 그야말로 24시간을 초긴장 상태로 있어야 했다. 



정말이지 '능력 부족'이었다. 나는 모든 게 부족한 엄마였지만 특히 체력이 부족했고, 공간이 부족했다. 아무리 깔끔하게 치워도 순식간에 어질러졌다.  



당시 전쟁터의 전우처럼 1분 1초를 함께 쪼개 고군분투했던 남편과의 대화.



-오빠, 오늘도 잠을 못 자고 출근해서 어떻게 해...


-아니야 꽃님아... 회사 가는 게 쉬는 거야. 나 다녀올게, 최대 빨리 올게!




빨래 널고 왔더니...


 

엄마는 백색소음에 취해서 눈감고 접을 뻔 했어





둘째 눕히고 오는 사이...  좋은 향기가 났을 텐데 먹지는 않아서 다행이지 뭐야


다용도 서랍이 좀 엉망이긴 했는데


안경...  안녕..



포스트잇처럼 떼어 쓰는 기저귀?!



딸, 다음엔 삶은 다음에 넣어보자..


고마워 닦아줘서



!!!
둘째야, 모서리 조심!! 손조심!!




언니가 말했다.       "아가야, 잘했어! 이제 돌아!!"






행선지가 궁금하다


할무니 댁에 보내 놓고, 페인트 칠하기







이 시기에 우리 부부의 육아를 번쩍! 들어 올려 준 건 '자연'이었다.




자연 육아가 좋은 이유 몇 가지!





1. 숲에 가면 싸울 일이 없다. 오히려 돈독해진다. 


형제자매가 있는 유아들, 특히 연년생 유아들은 소유 문제로 매 순간이 전쟁이다. "내 거!" "아니, 내 꺼!"


집에 굴러다니는 쌀 알 하나로도 싸울 수 있는 것이 '내 꺼'' 시기의 자매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주 어린 시기에는 똑같은 장난감, 똑같은 옷을 줘야 싸움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산에만 가면, 절대 싸우지 않았다. 싸울 필요가 없으니까!


아이들이 <보물단지>처럼 수집하는 것이 돌멩이요, 도토리요 나뭇가지인데 산에 산에 산에는 너무나 많은 것. 우리를 대형 서점에 데려다 놓고, 마음껏 집어가세요!라고 했을 때의 기분 아닐까? 아님 백화점 1층부터 10층까지 돌아다니면서 마음대로 골라 가세요!라고 했을 때의 기분 아닐까.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신나게 땅을 탐색하며 돌아다녔다.  


 

도토리 가지는 아이가 꺾은 게 아니라, 도토리 거위벌레가 도토리 안에 낳은 알을 보호하기 위해 가지를 썰어 땅에 떨어트린 것


그러다가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하면! 둘이 머리를 맞대고 신기해하며 함께 주위를 뒤적여 더 찾아다. 땅에 떨어진 예쁜 꽃잎, 도토리 모자, 밤송이 같은 것들. 뱀도 본 적이 있다.





정말 신기하게, 둘은 숲에서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오히려 서로 의지하고 공유하며 돈독했다. 비좁은 집에서 비좁은 공간들을 찾아 다니며 물건 하나를 두고 싸우는 것과 정반대였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2. 관찰의 경험이 일상으로 확장된다.


아이들 입장에서 땅을 자꾸 들여다보면 개미도 있고, 죽은 개미를 물고 가는 개미도 있고, 사탕 주위에 몰려드는 개미도 있고, 무당벌레, 나비, 개구리도 있고, 매미 껍데기도 있다. 그러니 숲의 맛을 알게 되면 얼핏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무언가를 자꾸 찾아내려는 습관이 생긴다.

 


아이들처음 접하는 자연관찰 책이나 창작 책은 친근한 자연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숲 육아와 책 육아는 화학적인 시너지를 낸다. 책이 더 재미있어지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진다.





3. 자연은 다양한 감각 자극을 준다.


우리는 집 안에서도 다양한 자극을 주려고 이런저런 놀이들을 해주지만,  머무는 곳이기에 결국엔 새로움이 고갈된다. 자연은 말이 필요 없는 자극의 노다지! 자매가 함께 새소리를 듣고 다람쥐를 보고, 냇물에 손을 담그고 돌이를 떨어트려 퐁당! 하고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다.



늘 찾아가는 장소도 갈 때마다 달랐다. 겨울 동안 무척 메말라 가지만 성성하다가 꽃이 먼저 피고, 언뜻 푸릇하다가 녹음이 울창해지고, 모기떼가 나타나면 당분간 오지 말자 했다가 다시 가면 어느새 단풍이 들어있다. 단풍나무 밑에 도토리가 떨어지고 청설모들이 바빠지고, 겨울이 오면 숲은 무척 황량해지지만, 눈이 덮이고 얼음이 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같은 계절에도 비가 오면 물이 넘치고, 가물어서 메마르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돌멩이 퐁당!' 놀이를 할 수가 없다. 진창이 되면 신발이 푹푹 빠졌고, 굵은 왕모래에 미끄러져 넘어지면 살이 까졌다.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자극이었다.




4. 관찰력 + 자극 = 창의력   -> 어떤 환경에서도 잘 논다.


어린이 사에 다니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발달 검사도 해주었지만 검사로도 창의력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기준에서는 아직 어리니까 잘~ 놀면 창의력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 논다. 아무리 황량한 곳에 있어도 금방 놀이를 찾고 만든다. 같이 간 아이들이 어른들 쪽으로 와서 짜증을 내며


"엄마, 여기 놀게 하나도 없어. 빨리 가자 제발!"이라고 칭얼거릴 때에도 우리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뭔가 하고 놀고 있다.



자연에서의 경험은 자연 안에 있을 때에만 머무르지 않고, 집으로 놀이터로 학교로 확장이 되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환경을 탐구하고 즐기게 해주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라니까 집에 TV가 없는 데도 심심해 하지 않고, 여전히 유튜브와도 친하지 않다. 더 재밌는 자극을 많이 받고 자라서, 이제는 스스로 만들기 재료를 찾아 만들고 놀거나 책을 읽거나 둘이 상황극을 하며 논다. 





5. 자연에서 노는 것을 즐기는 아이들이 되었다.



남편 출근 했을 때, 집에서부터 끌고 오른 유모차



5. 가족이 다 함께 행복한 시간


모든 에너지를 쏟아 일주일을 지내다 보면 체력이 정신을 잠식하려 들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하천으로 산으로 공원으로 나갔다. 스트레스를 털어 내었고 자연 속에 빛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함께 놀면서 함께 행복했다.






만약 <내가 워낙 벌레랑 산을 싫어해서...>라는 생각이 있다면, 그럼에도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많으니 도전을 권하고 싶다. 나도 산은 좋아하지만 벌레를 정말 경악스러워하는데, 경악스러워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태연한 척을 했다. 아이들 앞에서 감정을 감추는 것보다 공유하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이 경우에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마주한 생물에 대해 스스로 호불호를 가질 겨를도 없이 <엄마의 반응을 보고 무서운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는 게 더 아쉬워서였다. 아이가 판단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랬더니..


 


애벌레를 귀여워하고 (하지만 방생!), 지렁이를 잡아서 빗물에 목욕시켜 주고, 집에 벌레가 나타나면 엄마 대신 잡아 주는 아이들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제 자기의 판단을 갖게 되었으니, 나는 다시 벌레를 보면 꽥! 하는 본연의 나로 돌아왔다.



기본적으로 자연은 마음에 평안함을 안겨준다. 인위적인 소음 없이 편안한 바람 소리를 들을 때 나의 숨소리도 잘 들린다.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볼 때,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볼 때, 예쁜 꽃을 볼 때 살아 있음에 황홀함을 느끼게 된다.



나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결핍 된 것을 채워 줄 수 있는 고마운 자연



차가 있어도 없어도, 캠핑 장비가 없어도 갈 수 있고 언제나 열려 있는 자연, 숲에 정말 고맙다. 힘들기만 할 수도 있었을 우리의 가장 치열했던 시간을 상쾌한 바람이 드나들고 서로의 웃음이 오고 가는 시간으로 다독여주었다. 자연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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