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기가 생기면서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전세 8천이었다. (2014년 당시)
임신 중에 몸무게가 4kg이 줄어들 정도로 못 먹는 입덧을 심하게 했는데, 친정 엄마가 다녀가시기에 친정집과 독산동은 너무 먼 거리였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자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사했던 이전 세입자 새댁이 생각났다. 아기가 누워 있을 땐 괜찮겠지만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너무 좁고 힘들 것 같았다. 우리가 이사 들어올 때의 집 상태가 떠올랐다.
연립 단지 안에서도 언덕 두 고개를 올라야 하고 엘리베이터 없는 가장 꼭대기 3층이었지만, 넓어서 좋았다. 물론 직전의 집들보다 넓다는 의미이다. 안방, 미닫이방, 작은방, 나름의 거실, 부엌까지!
작은 방에서 본 거실과 미닫이 방
안방
사다리 없인 못 올라가는 다락방
게다가 집 양쪽에 베란다도 있고 안 쓰는 계절 살림들을 올려놓을 다락방까지 생겼다. 화장실은 난감했지만 세면대와 변기를 주인 집과 반반으로 비용을 지불해서 바꾸고 나니 쓸 만 해졌다. 전체적으로 남편과 함께 페인팅을 하고, 아기가 기어다니게 될 거실과 부엌, 미닫이방에는 장판을 주문해서 남편이 셀프로 깔았다.
이제 이사 좀 그만하고,여기에 자리 잡고 쭉 살면서 돈만 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났다.
예민한 기질의 첫째는 도우미 이모님이 퇴근한 밤부터 울기 시작해서 아침까지 울었다. 정밀한 등센서는 물론이고 잠깐쯤 울게 내버려 둘 만한 수준으로 우는 게 아니었다. 일단 얼굴이 빨개지면서 몸을 오징어처럼 비틀며 우니까 배가 아픈 건가, 어디가 잘못됐나 초보 엄마 아빠는 애가 탔다. 아기가 말을 못 하니 그저 "괜찮아, 엄마 아빠가 지켜줄게." 하면서 계속 안고 둥실둥실 흔들 그네를 했다. 해가 뜨고 도우미 이모님이 오시면 아기는 평온한 잠에 들었다. 남편도 나도 수면 시간이 2-3시간에 가깝던 날들. 병원에 가보니 영아산통같다는데 원인도 모르고 방법도 없다고 했다. 그사이 오른손 넷째 손가락이랑 다섯째 손가락이 마비되어서 침을 맞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아기는 왜 이리 예쁜지, 신기하고 소중한지. 특히 눈을 맞추고 내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어 줄 때 모든 고생과 고통이 솜사탕처럼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웠다. 소중한 아기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화장실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 집 화장실 안에 지금 누가 쪼그려 앉아서 몰래 담배를 피고 있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을 확 열면 흰 연기가 보일 것 같았다. 안방에 공기청정기를 틀고 아기를 눕힌 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얼른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어보면 막상 연기는 보이진 않았지만, 밑에서 올라오는 것이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냥 바로 밑에서 올라오는 냄새 같았다. 아랫집으로 내려갔다. 딩동!
아랫집 할머니께서 문을 열어 주셨다.
"안녕하세요, 윗집 새댁이에요. 저희 집에 신생아가 있거든요..."
"알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걸."
"네, 아기가 많이 울어서 죄송해요... 열심히 안고 달래고 있어요. 그런데 담배 연기가 너무 심하게 올라와서요."
"담배? 우리 집에 담배 피울 사람이 없어!"
"네? 화장실에서 피우시는 것 같던데... 며칠 전 그날이랑, 이날이랑 오늘이요."
"나 혼자 사는걸?"
"혼자 사시는구나...... 그런데 완전히 밑에서 바로 올라온 냄새 같았거든요."
"그래? 가끔 아들이 오긴 하는데... 집에서 피우진 않아,난 모르겠어."
그 옆집도 마찬가지였다. 담배 피울 사람이 없다는 거다. 누구에게 조심해 달라고 말해야 할지 대상조차 알 수가 없는 상황. 큰 아파트 단지도 아니고 고작 내 집까지 포함해 여덟 세대가 사는 빌라인데...... 속은 상하고 아기는 지켜야겠고. 빌라 현관문에 간곡한 부탁의 말을 써서 붙여 두었다. 이 사진보다 더 간곡하게 부탁했던 것 같다.
효과가 있었을까?
있었다. 한동안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정말 고맙고 안도했다. 역시 이웃의 정이란 게 있구나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떡을 해서 돌렸다. 남편 직장에서 멀긴 하지만 면적도 넓어지고 아늑한 이 집이 좋았다. 화장실이 뭔가 다 벗겨지고 너덜너덜하고 손볼 수도 없이 한쪽 벽만 한 거울이 붙어 있고 희한했지만 돈을 모을 때까지 살고 싶었다.
하지만...
6월에 태어난 아기가 6개월쯤 되던 겨울 무렵부터 매일매일 화장실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종이를 붙여도 소용이 없었다. 내려가서 문을 두드리면 이 집에는 흡연자가 없다고 했다. 분명 어떤 누군가가 화장실에 들어앉아 담배를 피우는 중 일 그 순간은 정말 혐오감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해결을 해야 했다. 검색하니 '전동 댐퍼'가 달린 환풍기가 있었다. 물건값과 별도로 설치비가 7만 원 정도 였던 것 같다. 이건 주인집에 말해봐야 싫다고 할 것 같아서, 설치 허락만 받고 우리 돈으로 했다.
시공기사님이 오셔서 환풍기를 뜯고 윗쪽 공간을 보시더니
"아... 여기 아예 아무것도 없는데요? 연통이고 뭐고 텅 비어 있어요."라고 하셨다.
슬픈 표정을 짓는 나에게 좀 더 긴 주름관을 설치해주겠다고 다시 가서 가지고 오셨다.
효과는?
정말 좋았다. 담배 연기가 올라올 때 켜 놓으면 금방 사라졌다. 연기를 쭉쭉 빨아올려서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어두운 어딘가로 멀리 배출 시켜주는 듯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화장실 조명등과 환풍기를 한 스위치에 연결해 놓아서 환풍기를 가동할 때 불까지 켜 놓아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이 좋은 물건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에겐 효과가 좋았다. 아기는 하루하루 행복하게 자라고, 연년생이 될 둘째가 생겼다.
둘째 출산이 다가와 만삭이 되었을 무렵,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곧 재계약 기간인데 월세로 바꾸려고 하니까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전세 8천이 딱 좋았는데 집이 정말 노후되긴 했어도 (지붕에서 밤에 쥐와 고양이가 술래잡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면대와 변기 다 바꾸고 욕실에 전동 환풍기까지 달아 놓았는데, 월세 전환이라니.
월세는 싫다고 말하고 집을 빼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런 집이 또 있겠지.' 생각했다. 2015년 중반이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전세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기가 막힐 정도였다. 만삭의 몸으로 걸음이 빠른 부동산 사장님들을 뒤뚱뒤뚱 쫓아다니며 뒤져봐도, 집이 없었다. 막막했다. 친정 부모님은 그냥 월세로 당분간 살아라고 하셨지만, 집주인에게 정이 떨어져서 어떻게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