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작가 삼락

작가의 노래

너와 나, 그리고 소통

by 바람

어젯밤엔 잠드는 데 애를 먹었다. 이불에 엎어져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 옆 구르기를 했다. 몇 번 반복했더니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었다. 열 시면 자던 평소 수면 패턴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얼근하게 소주를 드신 남편은 서재에서 잠들었다. 드르렁드르렁 리드미컬하게 코를 골았다. 잠시 코골이가 끊기자 귀를 쫑긋 세웠다. 숨소리를 기다렸다. 다시 드르렁 소리가 들렸다. 안심했다.


저녁녘에 Q와 다소 떨떠름하게 통화가 끝났는데 실수한 게 있나? 오해한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곧이어 ‘상대의 감정은 상대의 것이다’를 되뇌고 나는 나의 감정을 책임지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찝찝함은 미숙한 소통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켰다.


어찌어찌하여 잠이 들었는데 서재에서 기상알람이 울렸다. 숙취도 없는지 남편이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개수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가스불이 켜졌다. 도마 위에서 뭔가가 통통통 썰렸다. 국이 보글보글 끓고 향긋한 냄새가 안방까지 찾아들었다. 남편이 콧노래를 부른다.

어제의 고민이 무색하게 행복한 풍경이다. 나도 모르게 킥킥 웃었더니 기척을 알아챈 소냐가 냉큼 배 위에 올라와 정성 들여 꾹꾹이를 했다. 아침 안마가 끝나고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뽀뽀가 꾸아앙~~ 반갑게 다가온다.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서 방금 정글 탐험을 끝낸 것처럼 당당한 발걸음이다. 여기에 남편의 콧노래까지 들리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김에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나는 작년 초에 합창단원이 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가입이 불가피했다(지금껏 순수 타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처음엔 정말이지 막막했다. 음치에 박치인 내가 남들 앞에서 어찌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그렇지만 음악은 본능의 영역 같달 까. 시간이 지나면서 연습한 노래를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렸고 장단에 맞춰 절로 움직이는 몸을 발견했다.


단원생활로 배운 나만(?) 몰랐던 노래 부르기의 진수를 공유하겠다. 마에스트로는 호흡을 중요시했다. 숨이 곧 에너지이고 음악이며 생명, 즉 모든 것에 해당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좋은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느낌은 누구나 표현할 수 있고 관객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면 감동이 일어난다고 했다.


나는 노래를 배우는 과정이 듣기 좋게 소리 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노래는 자신의 훌륭한 목소리를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노래가 품고 있는 의미와 감동을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잘 전달하기 위해 발성연습을 하고 음을 익히고 가사를 외운다. 말하듯이 하라, 공중에 소리를 띄워라, 가사의 장면을 상상하고 그에 맞는 표정을 지어라, 소리로 그림을 그리듯이 표현하라. 모든 연습은 청중과의 소통이 목적이었다.


소리에 생명을 불어넣고 섬세하게 정성을 다하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도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다. 이 마음이 저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노래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조각을 하고 영상을 만드는 모든 예술 활동이 작가의 영혼이자 에너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변용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공감이 각자의 영혼을 풍부하게 만든다.


길게 흰소리를 늘어놓았다. 다시 Q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 오늘의 화두는 소통이었다. 소통이 잘되면 예술은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고 가정과 사회생활의 관계도 건강할 것이다.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잠들기 어려웠던 나는 미숙한 소통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이전 직장동료와의 문제에서 시작됐다. 나는 충분히,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노력을 했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관계 개선을 위한 지나친 노력이 오히려 관계를 망쳤다. 소통은 실패했고 나는 퇴사했다. 인간의 무례함이나 이기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나는 왜 그렇게 타인의 기분을 맞췄을까.


시간을 거슬러 원가족에 대한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폭력에 자주 노출되었던 상황. 생계문제로 지쳐있던 부모. 나는 보호받지 못했고 살아남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지나치게 애썼다. 최초로 맺은 관계에서의 행위방식은 점점 커져가는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역할극을 반복한 셈이다.


내면아이를 들여다보며 자신에 대한 연민, 가족에 대한 미움이 들었다. 관계의 삐걱거림과 소통의 부재 속을 허우적댔다. 한없이 편협해져 바늘하나 꽂을 곳 없는 날 선 마음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강의(김주환 교수님)에서 소통의 실마리를 찾았다. 수업 중 한 분이 “진심이 아닌데도 감사하는 습관이 삶에 도움이 되겠냐”는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노고로 이루어졌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냐고 되물었다. 아기는 생존능력이 제로인 상태로 태어난다. 뇌가 덜 자랐고 몸을 가눌 수도 없다. 생후 일 년 간 누군가의 24시간 돌봄이 없으면 죽는다.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돌봄이 있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어찌 진심이 아닐 수 있냐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로만 알던 ‘감사’가 가슴으로 내려왔다. 감사가 뭔지 선명하게 이해되었다. 아픈 몸으로 나를 돌봤을 어머니.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가정의 중심이 되어주신 아버지. 부모님으로선 최선이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다. 무엇 하나 내 손으로 만든 게 없다. 책상, 컴퓨터, 키보드… 전등, 시계, 의자… 연필 하나까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내가 직접 그린 그림과 몇 년간 키운 화초만이 나의 기여가 들어갔다. 하지만 그림만 해도 캔버스, 액자, 물감은 타인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고 나는 그 위에 색만 칠했다. 화초는 자연에서 얻은 빛과 물을 먹고 자랐다. 내가 한 일이라곤 때맞춰 물을 주고 골고루 볕을 쬐도록 화분을 돌려준 정도다. 과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관점만 바꾸니 세상이 곧 감사와 풍요였다. 이렇게 느끼지 못했던 것이 더 이상했다.

온통 타인의 정성으로 둘러싸인 내가 보였다. 내가 준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것을 세상으로부터 받았다. 이 자각은 억울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자연스레 녹였다. 분노, 슬픔, 원망이 채우고 있던 공간으로 사랑과 이해가 들어왔다.


마음이 넉넉해지니 달리 소통의 문제랄 것도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단순했다. 나의 상처는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서툴게 부대끼다 주고받은 애씀의 결과였을 뿐이었다.

더욱이 내가 붙들고 있던 소통의 의미가 달라졌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시키고 이해받는 것은 소통이 아니었다. 이는 폭력과 지배욕구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몰랐다.


각자의 인식과 경계를 인정하는 선에서 가능한 만큼만 가까이 가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소통은 이 정도일 것이다. 애당초 불가능한 상태를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해 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신혼 때 남편의 사랑 맹세는 널 행복하게 해 줄게, 가 아니었다. “행복은 셀프서비스야. 다만 당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그 원인이 내가 되진 않도록 노력할게”였다.


그리고 남편은 그 약속을 지켰다. 어쩌다 밤에 내가 울면 잠에서 깬 남편은 등을 토닥토닥해 주고는 바로 잠든다. 벌떡 일어나 뭔 일이냐고 캐묻거나 뭐든 다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한편으론 무심한 듯, 한편으론 다정한 듯, 나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돌보지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다린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적절한 거리에서 배려와 사랑을 유지할 수 있었다.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부간의 소통은 성공적인 듯하다.


이제 그 범위를 넓혀보기로 한다. 물론 쉬이 과거의 습관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우연히 감사를 이해하게 된 오늘의 감각을 기억하려 글을 쓴다. 저 언덕 넘어 나의 원 가족에게, 그 밖의 관계에게, 어딘가에 있을 나의 독자들에게, 다가가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의 노래가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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